본문 바로가기
소식지/현경이랑 세상읽기

'너'의 검정 보자기

by 인권연대 숨 2026. 9. 28.
'너'의 검정 보자기

 

박현경(화가, 교사)

 

눈을 뜨면 어김없이 가슴을 덮쳐 오는

검정 보자기가 두려웠습니다

햇발이 환할수록 몸 속엔 자꾸자꾸

검디검은 그늘이 밀려들어 왔습니다

새들이 눈이 부셔 비명을 내지를 때

나는 가위눌렸습니다 검정 보자기 그늘

깜깜하고 물큰한 슬픔 속 나를

만질 수 있는 이는 없었습니다

 

그대를 만났을 때 이 어둠 팔랑

날아가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러나

날기엔 아직 너무 무거운 물기

난 쓰디쓰게나마 고갤 끄덕입니다

깜깜하고 물큰한 슬픔 속 날 만지는

그대 손끝에서도 나옵니다 모락모락

검정 보자기 물밀듯이 내 가슴을 덮치고

눈 감아도 온몸 속 넘실대는 밤바다

하염없이 검디검은 이 그늘이 내 숨입니다

젖은 검정 보자기가 바로 내 살입니다

 

- 졸시, <검정 보자기 그늘>

 

나의 메모에 따르면 2004년 10월 8일에 이 시를 썼다. 하늘이 파란 가을날이었다. 10월 9일 한글날을 앞두고 국어교육과 행사로 백일장이 열렸다. 시제는 ‘숨과 꿈’. 2학년이었던 나는 잔디밭과 강의실을 오가며 꽤 시간을 들여 이 시를 써서 냈다. 우수상인가로 뽑혔다는 말을 며칠 후에 들었던 기억이 난다. 인문관 건물 안 층계참에 다른 수상작들과 함께 전시됐던 듯도 하고. 이 시 속의 ‘그대’는 추상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당시 내가 사랑했던 한 남자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오늘은 2026년 9월 24일. 저 시를 쓴 날로부터 약 22년이 흘렀다. 스물한 살의 대학생은 이제 마흔세 살 중견교사가 돼 있다. 지난 세월 산전수전을 겪었고 나의 ‘그대’도 몇 차례 다른 사람으로 바뀌었다. 나는 더 이상 스물한 살의 내가 아니다. 몸도 정신도 많이 변했다. 22년 전의 박현경은 이미 죽고 없다. 그때 나를 알던 사람들이 기억하는 나는 이미 이 세상에 없다. 지금의 나는 전혀 다른 새로운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검정 보자기 그늘’ 아래 있다. 나의 검정 보자기는 나를 도무지 놓아 주지 않는 불안과 우울이다. 불안과 우울은 머릿속 생각을 넘어 신체의 감각으로까지 나타나 끈질기게 나를 쫓아다닌다. 주로, 칼로 베는 듯한 흉통으로 나타나 하루에도 몇 번씩 나를 바닥으로, 땅속으로 잡아 끈다. 4년 전부터는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꾸준히 받으면서 약물을 복용하고 있고 그러면서 눈에 띄게 증상이 완화되었지만 여전히 아프다.

 

불안과 우울이 완전히 걷힌 나 자신이란 어떤 존재일까, 그것도 나라고 할 수 있을까, 궁금할 지경이다. 내가 시에 쓴 그대로, ‘하염없이 검디검은 이 그늘이 내 숨’이고 ‘젖은 검정 보자기가 바로 내 살’, 내 검정 보자기가 나의 ‘숨’이자 ‘살’, 내 삶의 일부인 것이다.

그래도 20여 년의 시간이 제자리걸음은 아니란 걸 알 수 있는 지점은, 내가 이제는 ‘너’의 검정 보자기를 눈여겨보게 됐다는 점이다. 내게는 뿌리 깊은 불안과 우울인 ‘검정 보자기’가 누군가에게는 또 다른 무엇으로 존재할 수 있다. 누구나가 일생을 무언가에 쫓기고 덮쳐져 가위눌린다. ‘모두가 자신의 검정 보자기와 싸우고 있다’.

 

그래서 나는 나의 ‘검정 보자기 그늘 깜깜하고 물큰한 슬픔 속’에서 고갤 돌려 ‘너’를, ‘너’의 검정 보자기를, ‘너’의 ‘깜깜하고 물큰한 슬픔’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손을 뻗어 ‘깜깜하고 물큰한 슬픔 속’ ‘너’를 만진다. ‘너’를 만지는 내 손끝에서도 ‘모락모락 검정 보자기 물밀듯이’ 쏟아져 나와 너를 덮치고, ‘너’는 말한다, 소용없다고. 이 슬픔은 무엇으로도 고쳐지지 않는다고.

 

언젠가, 사랑이란 ‘너’의 검정 보자기를 시원하게 걷어 치워 주는 일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렇다면 사랑이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일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사랑은 나의 검정 보자기 그늘 속 내가 ‘너’의 검정 보자기 그늘 속 ‘너’를 바라보고 만지는 바로 그 지독히도 무용하고 무력한 행위, 바로 그것이란 사실을. 그 지독히도 무용하고 무력한 행위가 있어 내가 살 수 있고 ‘너’도 살 수가 있다는 것을. 무용하고 무력한 그것이 없으면 삶은 더 지독한 어둠, 숨 막히는 고통일 테니까. 그래서 나는 오늘도 ‘너’에게 안부를 묻는다. ‘너’를 바라보고 ‘너’에게 손을 뻗는다.

그림: 박현경, ‘천사 54_푸른 날개’

 

 

'소식지 > 현경이랑 세상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새끼발가락에게 들은 이야기  (0) 2026.08.25
봉순이는  (0) 2026.07.24
장소들  (0) 2026.06.25
답 없는 헤맴, 답 없는 사랑  (0) 2026.05.26
내게 오는 날개  (0) 2026.04.27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