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파도를 지어 줄게
박현경(화가, 교사)
1.
타자(他者)의 기쁨과 슬픔이 곧 나의 기쁨과 슬픔이 되는 순간, 그의 문제가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닌 ‘나의 일’로 다가오는 순간, 즉 내가 그의 삶에 동참하기로 마음먹는 순간, 나의 자족적이고 안온한 세계를 보호하고 있던 태막(胎膜)이 찢어지고 나는 경계를 넘어 타자를 향한다.
왜 나는 나만의 천국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누리며 편안하게 지내지 못하고, 온갖 고민과 고통을 감수해 가며 타자의 삶에 동참하게 되었을까?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를 사랑하는 마음, 그와 진정으로 연결되고 소통하기를 열망하는 마음이 안온함 속에 머무르고 싶은 마음을 이겼기 때문이다.
천사가 천국을 떠나 땅을 향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보고 싶고, 사람들과 함께 살고 싶어서다. 사람들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내가 평탄한 천국에 머무는 대신 굳이 경계 밖으로 나서는 존재를 그리는 것도 당연히 사랑 때문이다. 안온함을 떠나 시작되는 것, 그것은 바로 사랑이다.
2.
기괴함과 아름다움 사이에 얇고 투명한 막이 있다.
이 막은 너무 얇아 어쩌면 아예 없는 듯도 있다.
수년째 ‘기괴함’과 ‘아름다움’의 관계에 천착하고 있다. 내가 보기에 ‘기괴함’과 ‘아름다움’은 얇고 투명한 종이의 앞뒷면과 같이 서로 딱 달라붙어 있다. 실제로, 기괴해질 위험을 아슬아슬 무릅씀으로써 첨단(尖端)의 아름다움이 빛을 발하는 경우를 미술은 물론, 음악, 문화, 영화, 연극 등 여러 예술 영역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 예로 나는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영화 ‘그녀에게’ 등을 얼른 떠올릴 수 있다.
작업을 통해 내가 추구하는 아름다움은 기괴해질 위험을 무릅쓴 아름다움이다. 또한 기괴함과 아름다움의 관계에 대해 질문을 던지게 하는 아름다움이다, 우리가 ‘기괴하다’, ‘아름답다’라고 내리는 판단이 편견은 아닌지 되묻게 만드는 아름다움이다. 내 그림 속 천사들의 형상도 ‘기괴함과 아름다움 사이에’ 있는 ‘얇고 투명한 막’이 얼마나 맑고 투명한지, 혹시 아예 없는 것은 아닌지 관람자에게 묻고 있다.
이들의 ‘기괴한 불안’과 ‘품어 안는 포용’은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다. 어디에도 온전히 소속되지 못한다는 극심한 고독에서 나온 ‘기괴한 불안’이, 자기 외의 또 다른 불안하고 고독한 존재를 ‘품어 안는 포용’으로 이어진다. 내게는 그 둘이 모두 눈부시게 아름답다.
3.
모든 두려움을 뛰어넘어 마침내 널 만날 거야.
내가 썼고, 또 내가 매우 좋아하는 문장이다. 나에게 ‘너’는 내가 소통하고 싶고 연결되고자 하는 모든 타자를 의미한다. 돌이켜보면 지금까지 나의 창작 활동 전반에 늘 연결과 소통에 대한 갈망이 담겨 있었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누구와의 연결과 소통인가? 결국은, 그 그림을 바라보는 관람자와의 연결과 소통이다.
내가 그린 그림을 누군가가 바라보면서 자신의 삶과 연결 지어 느끼고 생각하는 그 조용한 순간에 나는 환희를 느낀다. 내가 그림을 그리고 전시를 하면서 가장 바라는 일은, 나의 불안과 상처가 내 그림을 통해 누군가에게 가 닿아 그의 삶에 알록달록한 파도가 되는 일이다. 그리고 나아가 내 그림이 누군가가 자신의 불안과 상처로 다른 누군가의 불안과 상처를 덮어 줄 수 있는 힘을 내는 데에 조그마한 계기라도 될 수 있다면, 작가인 내게는 더없는 영광이고 행복일 것이다.
어쩌면 내가 그림을 그리는 이유는 결국 여기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모든 두려움을 뛰어넘어, 마침내 누군가에게 닿는 것. 그리고 그 작은 만남이 또 다른 만남으로 이어지는 것.
오늘도 작업을 하며 읊조린다.
나의 불안을 펼쳐서, 너의 불안을 덮어 줄게.
나의 상처를 펼쳐서, 너의 상처를 덮어 줄게.
내 알록달록한 눈물로, 너에게 파도를 지어 줄게.

*이 글은 2026년 9월 예술기획사 ‘아르테위드’와 진행한 인터뷰 내용 및 ‘공동선’ 2026년 11-12호에 게재된 필자의 글 ‘그것은 바로 사랑’을 재구성한 것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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