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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산 위에서 부는 바람

나의 노래

by 인권연대 숨 2026. 10. 26.
나의 노래

 

잔디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면서도 첫 문장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이 모인 곳에 다녀왔다. 모임을 시작한 지 21주년을 맞이하는 문학회에서 치리는 시상식 행사에. 기타를 챙기고, 노래를 챙기고, 메마른 목을 축여줄 따뜻한 차를 챙겨서 2시간 넘게 운전하여 2년 만에 부안에 있는 석정문학관을 방문하였다. 2년 전 버드나무로 두통약을 만든다는 이야기를 들은 다음부터 엄마를 위해 버드나무 길을 만들어 그 길을 걷다 보면 어느새 엄마의 두통이 사라지기를 바라는 내용의 시를 읽다가 노래가 흘렀다. 그 동시를 쓰신 선생님께 공유하였고, 선생님이 강연을 하신다기에 나도 들으러 갔다가 강연을 여는 노래로 <버드나무 약국>을 불렀다. 누군가 그 노래를 듣다가 다음 주에도 이곳에서 여는 행사에 와서 노래를 몇 곡 불러줄 수 있는가를 물어왔다. 그래서 그 해엔 부안을 연속 2주 방문하였다. 행사의 이름은 디카 시 시상식이었고, 시상식 전에 식전 공연으로 3팀이 공연을 하기로 되어있었다. 나의 순서는 첫 순서. 그때 노래 부르기 전에 떨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노래를 부르고 나서 더 떨었던 기억은 있다. 리허설 할 때는 잘 작동하던 앰프가 막상 공연 5분 전쯤엔가부터 출력이 되지 않았고, 누군가는 정해진 시간에 시작을 해야 하니까 나는 기타와 내 목소리만을 가지고 그 장소를 채워나갔다. 누군가 박수를 치기 만에도 박수소리보다 작은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가 무슨 힘이 있을까 싶었지만, 한 곡을 부르고 짧은 이야기를 하고 또 한 곡을 부르고 짧은 멘트를 하고 노래를 부르고 하는 걸 하다 보니, 작은 목소리로 응원하듯 함께 부르는 사람이 있었다는 기억이 났다. 그날 나의 뒷 순서에 노래하시는 분들은 음악을 전공하고 또 어디선가 급히 합동작전으로 앰프를 공수해 와서 멋진 공연을 해내는 것을 그 자리에 앉아 지켜보며 조금은 얼은 마음으로 시상식이 끝날 때까지 앉아 있었던 기억. 초대한 이에게 도움이 됐는지 잘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건네고 돌아선 기억. 그해 가을이 다 지나갈 때까지 그 자리에 갔던 것이 잘 한 것일까 하는 생각으로 가끔 숙연해지는 마음이었던 그 기억. 지나간 일로 지나보냈는데 다시 전화가 왔다. 그때 너무 좋았는데 다시 와 줄 수 있느냐고... 으앗~!

 

 어느새 나는 전화 통화를 하면서 2년 전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그럼에도 괜찮다면 다시 가보겠다고 약속을 하고, 수상작 9편의 시를 공유 받았다. 며칠 동안 시를 읽고 또 읽었다. 9편의 시를 가지고 이리저리 코드를 써보며 악보도 없는 노래를 만들어 부르고, 연습하고 또 연습해서 익혔다. 시상식 식전공연으로 15분, 시상식 중간에 축하공연으로 3곡을 불렀다. 어차피 아무도 알지 못하는 신곡들. 사소한 시간의 흘러감에 얹어 있는 노래라서 그냥 불렀다. 문학회 지도교수님의 동시로 만든 노래는 문학회 회원님들이 따라 불러주셨고, 2번 반복해서 부르니 시상식에 참여하신 분들의 얼굴에 미소가 은행잎 단풍처럼 물들어 마주 보고 앉아 있는 나의 마음도 함께 물들었다. 시상식 순서에 따라 진행되는 동안 다시 분위기가 무거워져서 수상자분들이 사진을 찍을 때마다, 우리는 “디카 시”라고 말하며 미소를 다시 함께 만들었다. 시상식이 끝나고 노래를 들으며 울컥했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어떤 이의 멀리서 왔는데 밥은 같이 먹고 가야지 하는 권유를 듣기도 하고, 나는 내 마음속의 대상 시를 쓰신 분께 살짝 다가가 “제 마음속의 대상입니다.”라고 속삭이기도 했다. 함께 뒷정리를 하고 문학회 분들은 시화를 군청 로비에 전시하러 가시고 나는 갔던 길을 돌아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돌아오며 아무 것도 가리지 못하는 남쪽의 드넓은 가을 들판을 보고, 오늘만의 노을이 생성되고 사라지는 것을 보고, 휴게소에 들러 모시송편이랑 공주밤빵이랑 호두과자를 사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와서 간단히 저녁을 해먹고 오늘 있었던 일을 잠시 생각하고 어느새 잠들었다.

 

 휴대전화 음성녹음 앱에 쌓여가는 노래가 언제부터 나에게서 흘러나왔는지, 나에게서 어떻게 흘러나오는 것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기타를 끌어안고 아무 코드나 잡고, 아무 글이나 마음에 와 닿는 글이 있으면 그것이 수필이든, 소설이든, 시든 상관없이 그냥 불렀다. 부르다가 나에게 위로로 다가올 때 한참을 울다 부르고, 목에 메이고 마음이 너무 슬퍼서 부르지 못하는 날엔 그냥 계속 울기도 하였다. 어떤 날엔 다시 마음을 잡고 담담하게 부르며 완성을 하고 친구에게 들려주기도 하고, 그 중에 어떤 것은 제법 노래가 되어 흐르고 반복해서 부르다 보면 진짜 노래가 되었다. 그래서 누군가와 함께 듣거나 함께 부르고, 어쩌다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부르기도 했다. 그러다보면 모르는 그에겐 어디선가 본 내가 되어 나는 그를 알지 못하면서도 인사를 받게 되기도 하고 그랬다. 그래서 생각해 본다. 그저 그 자리에서는 살아있는 노래이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면 흩어지는 노래라서 부를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잘 불러서 자꾸 부른다기보다 공기처럼 숨처럼 잠시 휴식이나 잠깐의 쉼을, 한 자락의 위로를 이야기하듯 읊조리듯, 흥얼거리듯 부르는 것이어서 부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흥얼거림은 인류 모두의 자산이니깐. 흥얼거림이여, 영원하라. 첫 문장이 영원히 반복되는 것처럼 말이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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