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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살며 사랑하며

<113호> 최저임금 1만원 시대를 생각하며_ 서재욱(청주복지재단 연구위원)

by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 2021. 9. 30.

 

내년도 최저임금이 9,160원으로 결정되었다. 올해보다 440원 오른 수치이다. 이로써 문재인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률은 평균 7.3%를 기록하게 되었다. 박근혜 정부(7.4%)와 비교해도 큰 차이가 없는 수준이다. ‘최저임금 1만원공약도 무산되었다. 물론 전반적으로 저조한 경기, 키오스크 등 무인화 기기의 발달, 코로나19로 인한 타격 등 객관적인 조건이 상당히 불리했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최저임금 인상이라는 방향 자체가 잘못된 것이었다고 한다. 과연 그러할까?

 

주지하다시피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최저임금은 일자리 감소의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그러나 최저임금은 2000년을 전후하여 근로빈곤과 불평등의 증가에 대한 문제의식이 확산되면서 다시 주목받게 되었다. 1999년 이후 법정 최저임금이 새로 도입된 국가로는 영국, 체코, 슬로바키아, 폴란드, 에스토니아, 슬로베니아, 아일랜드, 이스라엘과 독일 등이다.

 

최저임금이 새롭게 관심을 끌게 된 것은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시간제, 임시직, 비정기 일자리 노동자가 크게 증가한 것과 관련이 있다. 이들은 노동조합에 가입되지 않아 단체협약, 성과급이나 보너스의 적용을 받지 못해 생산성 향상의 혜택을 누리지 못했고 실질임금은 정체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에서 비정규 근로자의 절반 이상이 가구의 주생계부양자이며 80% 이상은 아동을 포함한 2인 이상 가구에 살고 있었는데, 비정규 근로자가 가구의 주생계부양자일 때, 정규 근로자가 가구의 주생계부양자일 때보다 저소득의 위험은 5, 빈곤의 위험은 10배 높았다(OECD, 2015).

 

코로나19 이전에 이미 소득불평등은 심각한 상태였고, 소득불평등의 증가가 정치적 불안정 뿐 아니라 경제성장에도 중장기적으로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가 축적되면서 지나친 불평등을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최저임금은 임금 불평등의 완화에 일정한 기여를 할 수 있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이는 최저임금이 상대적으로 저임금·불안정 일자리에 더 많이 종사하고 있는 여성 노동자들에게 혜택을 주는 것과 관련이 있다.

 

물론 어느 정도가 적절한 최저임금 수준인지는 여전히 뜨거운 논쟁의 주제이다. 최저임금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합의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지나치게 높은 최저임금이 고용의 증가를 저해할 수 있다는 문제제기가 계속 제기되고 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최저임금이 주거, 의료, 복지 등의 다른 정책들을 보충하고 강화하는 방식으로 설계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국제노동기구는 최저임금이 고립된 제도로 인식되고 활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최저임금은 식비, 주거비, 의료비, 교육비 등 필수재 비용을 감안하여 노동자와 그 가족의 기본적이지만 괜찮은’(basic but decent) 생활을 보장할 정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단지 최저임금이 얼마나 오르느냐의 절대치가 중요한 게 아니라 필수재 비용이 어떻게 변했느냐의 상대치도 중요하다.

 

문재인 정부의 최저임금 정책에 아쉬움이 있다면, 최저임금이 주거, 의료, 교육 등 다른 복지의 영역과 잘 연계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단적으로 한국의 GDP 대비 공공사회복지 지출 비율은 여전히 OECD 평균 20.0%의 절반 정도인 12.2%에 불과하다(2019년 기준). 그 뿐 아니라 크게 오른 집값과 여전한 사교육비 부담은 저소득층의 미래 전망을 어둡게 하는 요인이다. 다음 정부에서의 최저임금 정책은 부디 포괄적인 사회정책의 한 부분으로 다루어지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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