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지/마음거울97 <제67호> 우리 엄마_이영희(회원/원영한의원) 점심을 먹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간, 어머니께서 장바구니를 들고 오셨다. 그 안에서 꺼낸 건, 깻잎 장아찌와 수건으로 몇 겹을 감싼 잡곡밥이었다. “얼른 먹어라.” 따뜻한 밥을 먹이고 싶은 어머니의 바람과는 달리 내 입에서는 퉁명스런 대답만 나왔다. “나중에 먹을게요. 조금 전에 먹었어요.” 어머닌 그렇게 건네고는 휭 하니 가버리셨다. 요즘 운동을 열심히 하신 덕에 걸음걸이가 많이 가벼워졌지만, 여전히 걷는데 불편해 하신다. 그런 어머니를 보니 짠한 마음과 함께 알 수 없는 짜증이 올라온다. 그런 내가 유난히 싫어지는 오늘이다. 우린 한두 살 터울이 나는 5남매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함께 산 날이 평생을 합쳐도 석 달이 안 될 거라 하셨다. 그 말씀처럼 내 기억 속 어머닌 늘 혼자셨고, 억척스럽게 집안 .. 2019. 9. 26. <제66호> 변화는 있어도 변함은 없기를..._이영희 회원(청주 원영한의원) 남편과 자주 가는 막걸리집이 있다. 무한 반복으로 흘러나오는 7080 노래가 무척 정겨운 곳이다. 그날도 기분 좋게 한잔 하던 차였다. 그런데 갑자기 옆 테이블에 있던 청년이 주사를 시작했다. 소리를 지르고 욕을 할 때까진 그러려니 했는데, 소주병을 집어던지는 바람에 안이 소란스러워졌다. 같이 온 일행이 청년을 데리고 나가서 잘 마무리되긴 했지만, 마음이 상한 우리는 일찍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 술 취한 사람이 제일 무섭고, 주사 부리는 사람이 제일 싫어!” 궁시렁 궁시렁 하며 집으로 돌아왔는데 큰아이가 평소보다 일찍 집에 와 있었다. 술 냄새가 솔솔 풍긴다. 친구들과 한잔 했단다. 요놈, 취했다. “엄마, 내 나이가 스물다섯인데, 아직까지 독립도 못 하고... 엄마 아빠한테 얹혀살고 있어서 너무 미안.. 2019. 9. 26. <제65호> 손톱 끝 봉숭아 몇 밤만 지나면 질터인데..._이영희(회원, 원영한의원) “엄마, 벌써 반이나 없어졌어요.” 손톱을 들어 보이며 막내는 제법 심각한 표정을 짓는다. 어느새 저만큼 자랐는지 봉숭아물이 절반이나 지고 없다. “첫눈 올 때까지 있어야 첫사랑이 이뤄진다는데... 어쩌냐...” 농담 삼아 던진 말에 아이는 씩 웃는다. 무슨 소리냐며 펄펄 뛰지 않는 걸 보니, 뭐가 있긴 한가 보다. “엄마도 첫사랑 이루고 싶어요?” 대체로 둔한 편인 내가 유독 예민한 것이 있다면, 그건 피부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화장도 못하고 악세사리도 착용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1년에 한 번, 맘 놓고 멋을 부릴 수 있는 날이 있으니, 바로 봉숭아물을 들이는 날이다. 알러지 반응을 걱정하지 않고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일이다. 뭐가 그리 바빴는지 어느 시골 마을 담장 밑에 피어 있는 봉숭아를 보고.. 2019. 9. 26. 이전 1 ··· 28 29 30 31 32 3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