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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2호> 시를 들려줘서 고마워_박현경(교사) ‘지각시’. 지각하면 외우는 시(詩). 우리 반 교실에서 자주 쓰이는 단어다. 처음 교사가 됐을 때, 반복해서 지각을 하는 학생들에게 자꾸 화가 났다. 그 학생들에게는 지각하는 습관을 안 고치면 나중에 사회생활을 어떻게 하려고 그러느냐, 등교 시간도 하나의 약속인데 약속을 계속 어기면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이 된다는 등의 따분한 이야기를 격앙된 어조로 늘어놓곤 했지만, 정말로 그들의 미래가 걱정돼서 화를 낸 건 아니었다. 돌이켜 보면 내 분노의 이유는 두려움이었다. ‘나의 지속적인 지도에도 불구하고 이 친구들이 행동을 바꾸지 않고 계속해서 지각을 한다는 건 내가 무능한 교사라는 증거가 아닐까? 이러다 내 통제를 벗어나는 학생들이 점점 더 늘어나면 어쩌지?’ 지금 생각하면 안쓰럽고 웃음이 나온다. 자기 고유.. 2020. 1. 8.
<후기> 2019 베트남 숨 평화기행 in 호치민 (3) 1.똔득탕(1888-1980) 통일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의 첫번째 국가주석이었던 똔득탕(1888~1980)은 베트남 국민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인물로 널리 알려져있다. 제1차세계대전 당시 프랑스군 사병으로 징집되어 전쟁에 참전하면서 당시 러시아의 10월혁명을 보게 되었다. 그는 베트남 민중 또한 프랑스 식민지로부터 독립할 수 있음을 확신한다. 1919년 프랑스 내 노동조합단체에서 노동운동을 이어오던 그는 1920년 베트남에 돌아와 베트남 내에서 노동운동에 종사하였다. 그는 1929년 프랑스 인도차이나 정부에 의해 구속당하며, 강제노동 30년형을 선고받았다. 1945년 8월 혁명당시 탈옥한 그는 1946년 하노이 정부의 중앙위원회 위원, 1949년 북베트남 국회 상임위원회 위원장을 지냈으며 1969년 9월 .. 2019. 12. 19.
<후기> 2019 베트남 숨 평화기행 in 호치민 (2) 붕따우의 기운을 가득담고 오늘부터 호치민 평화의 흔적을 찾아 떠납니다. 1. 통일궁 1868년 프랑스 식민통치를 위해 사이공에 세워진 프랑스 총독의 관저이자, 베트남 전쟁당시 미군의 작전본부로도 사용되었던 이곳은 프랑스 독립 후 남북으로 분단되며 남베트남의 초대 대통령 응오딘지엠의 대통령 궁으로 사용되었다. 북베트남군이 이곳으로 탱크를 몰고들어오며 전쟁의 막을 내린 역사 이후 "독립궁전" 지금의 통일궁으로 개명되었다. 1층은 내각회의실과 연회장, 2층은 대통령 집무, 작전, 응접실과 관저, 3층은 대통령부인 응접실과 여가생활 공간, 4층은 대통령 궁으로 사용된 이후 개조한 댄스 룸등으로 이루어져있다. 다시 통일궁의 지하로 내려가면 작전사령실, 대통령침실, 사관실등으로 전시 남베트남의 핵심적인 장소로서 기.. 2019. 12.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