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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위에부는바람31

<제59호> 고마워요_잔디(允) 1. 얼었던 강이 녹아 흐른다. 겨우내 언 강 아래서도 물이 흐르고 있었음을 생각한다. 화가 나거나 고집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는 순간에도 흐르고 있었을 내 몸 속의 수분을 그리워한다. 단단하게 굳어있다고 여겨졌을 마음, 그 마음 아래에서 흐르고 있었을 내 마음, 그 줄기를 찾아 내 진정성을 보고야 말겠다는 그런, 굳은 다짐은 아니다. 흐르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싶을 뿐. 나의 블로그 닉네임처럼. 흐르는 나무처럼... 제주 가는 비행기에서 친구가 만났다던 그 하늘 이야기가 기억난다. 세차게 내리는 비. 그 위 구름. 구름 위의 청아한 하늘. 늘 거기에 있었을 티 없이 높고 맑은 하늘. 그것과 같을 내 마음의 참 모습... 2. 내 오랜 친구랑, 일상의 사소함을 알콩달콩 수다하는 내 친구랑, 톨레 선생님께.. 2019. 10. 23.
<제78호> 詩月_잔디(允)  모과나무도..., 벚나무도... 화살나무도..., 다시, 단풍 든다. 아, 가을. 덥다고, 비가 많다고 말하던 어제는 지나가고, 아침과 밤 서늘함에, 거실 한 켠에 우리와 따뜻한 이야기를 함께 만들어 갈, 난로가 들어온, 오늘이, 왔다. 난로는, 4월에 나갔다, 10월에 들어왔으니, 일 년의 반절은 난로에게 기대어 사는 격이다. 난로 안에서 소멸하며 따스함을 뿜어내는 나무를 보며, 나의 소멸을 생각한다. 함께 공부하던 아이의 떠나감을 듣던, 8월의 마지막 날 이후, 간간이 가깝고, 먼 사람들을 떠나보낸 소식, 가깝고, 먼 사람들이 떠나간 소식을 듣는다. 홀로 세상살이를 견디어낼 누군가를 생각하다가 더 이상 그이가 불어주는 하모니카 소리를 함께 즐길 수 없음 이상의, 허전한 그이의 부재를 생각하며 슬퍼.. 2019. 10. 17.
<제77호> 그 아이의 시간_잔디(允) 수첩에 일기도 없고, 낙서도 없고, 마음 깊이 담은, 문자도 없이 구월을, 보낸다. 나의 구월은 익숙함을 떠나보내면서 시작되었다. 밤사이 비가 많이 내린 다음 날, 팔월의 마지막 날 오후, 점심 먹기 전, 받은 전화... 오전에 아이가 혼자 집을 나왔다가 흙탕물에 떠내려갔고, 많은 사람들이 마을을 따라 흐르는 소하천을 수색하다 조금 전에 아이의 몸을 찾았다고... 아이의 차가운 몸 앞에서, 잘잘못을 서로 따지며 아이의 할머니와 아이의 엄마는 큰 목소리를 내고 있고, 아이의 아버지는 꺼이꺼이 우는 모습을 누군가 전해왔다는 내용의 전화... 믿을 수가 없어서, 우선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 담임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다. 선생님도 나도, 아이의 눈을 마주보며 아이와 더 이상 놀이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서로 울.. 2019. 10.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