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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

<114호> 저는 변화하고 있습니다._인권연대 숨 정미진 일꾼

by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 2021. 10. 26.

 

모두가 항상 변화하면서 살아가고 있지만 무엇을 선망하며 살아가는가에 따라 변화의 내용은 아주 달라집니다. 매일같이 일어나는 변화가 지금 세삼 중요하게 여겨지는 이유는 선망의 대상이 변화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선망하며 살아온 것을 한마디로 정리하기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확실한 점은 그 속에 저는 없었습니다. 내가 아닌 모습을 선망했습니다. 나보다 좀 더 똑똑한 사람, 정확한 사람, 자신감 있는 사람, 주저 없이 앞만 보고 가는 사람, 많은 것을 이룬 사람, 많은 것을 이룰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 나와 다른 모습을 선망하며 노력할수록 알 수 없는 공허함이 쌓여갔습니다. 그때는 왜 내가 원하는 것을 해도 공허한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는데 지금 와서 돌아보니 무엇을 선망하는지의 문제였습니다.

 

인권연대 숨의 일꾼이자, 인권활동가인 저는 한 사람입니다. 여성이고, 청년이고, 부자도 아니고, 학벌도 좋지 않습니다. 능력도 별로 없으면서 이 사회에 불만이 많고, 화도 많고, 호기심이 많고, 고민도 많습니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웃음 나지만 인권연대 숨에서 활동을 시작할 때 저는 인권단체 활동가 3년이면 지역사회의 인권 현안에 영향력도 좀 미치고 어떤 때는 격렬하게 투쟁도 하고 확신으로 가득 찬 나만의 활동도 주저 없이 하고 있을 거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조용하고, 불안하고, 주저하며 3년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인권활동가로서 투쟁했던 가장 첫 번째 대상은 저 자신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저는 지난 3년 동안 인권을 공부하고 고민하면서 제 자신을 인권적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내 모습을 부정하려는 나와 하루도 조용할 날 없이 다퉜습니다. 매일 같은 자리를 맴도는 것 같았습니다. 앞을 향해 나아가는 것보다 안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를 깊이 들여다보지 않고 쉽게 평가하는 이들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인정받기 위해 나를 숨기고 외면하면서 이 길이 정말 맞는 길인지 질문하지 않으면서 나아갔을 것입니다.

 

서툴지만 이제 저는 다른 것을 선망하며 변화해갑니다. 촌스럽고 호기심 많은 나, 앞만 보지 않고 고민하고 주저하면서 옆도 뒤도 보는 사람, 길을 잘못 들었을 땐 멈출 수 있는 사람, 느리지만 내가 만들어갈 인권적인 세상, 우리는 분리되지 않고 연결되고 만날 수 있다는 믿음, 가장 외로운 사람의 곁에 함께 하겠다는 결심과 같은 것들을 선망합니다. 이제는 그렇게 사는 것이 외롭더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지난 3년 동안 저 자신과만 싸우며 살진 않았습니다. 숨에서 함께 고민하고 기획한 새로운 활동들을 시행에 옮기고, 교육의 현장에서 인권적인 세상을 위해 함께 하자고 부단히 설득하고 나의 목소리를 궁금해 하는 사람들 앞에 망설임 없이 섰습니다. 나의 분노를 인권의 언어로 전환하고 누구와 무엇을 같이 해야 하는지 고민했습니다. 누군가의 눈에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고요한 물결 같은 시간이었을지 몰라도 저에게는 미뤄두었던 오래된 숙제를 하고 나에게 따뜻한 위로와 믿음을 새겨 넣는 뜨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앞으로는 비슷한 일상이지만 조금 더 자신 있게 나아가볼 생각입니다. 공허함의 자리에 힘이 조금씩 차오르고 있으니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남들이 중요하고 대단한 일이 있다고 네가 아니면 누가 하겠냐고 저를 유혹해도 저는 저의 길을 가겠습니다. 어느 날은 같은 길일 수도 있고 어느 날은 혼자 걸어가야 하는 외로운 길일지도 모르지만 저 자신을 믿고 제 동료들을 믿고 가겠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어디에나 있을 자신이 아닌 다른 무엇을 선망하고 있는 공허한 사람이 보인다면 나의 시간과 진심을 들여 곁에서 힘이 되어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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