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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마음거울97

연푸른 혀들 연푸른 혀들  김해자  이른 아침부터 참새도 할 말이 많다 중구난방 회합장이 된 이 집 지붕은 누구 것인가, 하품 늘어지게 하며 묻는 사이에도 우르르 날아오는 이 밭은 무료 급식소, 옆집 굴뚝에 세사는 딱새들이 쪼아 먹어도 군말이 없다  황금조팝 겨드랑이에서 노란 혀들이 솟아나고 있다 진군 명령 없어도 알아서 포복한다 잔디는 일렬횡대로 어깨를 겯고 부추도 장딴지에 힘을 준다 뿔이다 안간힘으로 밀어 올리는 푸른 비명이다 멍이다 숨어 지내던 갓도 깃대를 세우고 사철나무에 더부살이하던 더덕도 혀를 내민다 뽕나무 그늘 귀퉁이에서 꽃마리가 떨고 제비꽃이 수줍게 환호한다  등기권리증이 통하지 않는 거주지 이 공화국엔 형형색색 깃발들이 나부낀다 기지개 켠다 벌과 나비도 추위와 배고픔을 증명하지 않아도 기초수급은 된다.. 2024. 9. 26.
사랑하는 별 하나 사랑하는 별 하나  이성선  나도 별과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외로워 쳐다보면 눈 마주쳐 마음 비춰주는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나도 꽃이 될 수 있을까.세상일이 괴로워 쓸쓸히 밖으로 나서는 날에가슴에 화안히 안기어눈물짓듯 웃어주는 하얀 들꽃이 될 수 있을까. 가슴에 사랑하는 별 하나를 갖고 싶다.외로울 때 부르면 다가오는 별 하나를 갖고 싶다. 마음 어두운 밤 깊을수록우러러 쳐다보면반짝이는 그 맑은 눈빛으로 나를 씻어길을 비추어주는그런 사람 하나 갖고 싶다.    - 물방울 우주(황금북, 2002) 2024. 8. 26.
꽃을 보는 법 꽃을 보는 법  복효근  꽃이 지고 나면 그뿐인 시절이 있었다꽃이 시들면 바로 쓰레기통에 버리던 시절나는 그렇게 무례했다 모란이 지고 나서 꽃 진 자리를 보다가 알았다꽃잎이 떨어진 자리에 다섯 개의 씨앗이솟아오르더니 왕관 모양이 되었다화중왕이라는 말은꽃잎을 두고 한 말이 아니었던 것이다모란꽃은 그렇게 지고 난 다음까지가 꽃이었다 백합이 지고 나서 보았다나팔 모양의 꽃잎이 지고 수술도 말라 떨어지고나서 암술 하나가 길게 뻗어 달려있다꽃가루가 씨방에 도달할 때까지 암술 혼자서긴 긴 날을 매달려 꽃의 생을 살고 있었다 꽃은 그러니까 진 다음까지 꽃이다꽃은 모양과 빛깔과 향기만으로 규정되지 않는다사람과 사랑이 그러하지 않다면어찌 사람과 사랑을 꽃이라 하랴 생도 사랑도 지고 난 다음까지가 꽃이다    - 고요한 .. 2024. 7.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