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지/마음거울98 괜찮아 괜찮아 한강 태어나 두 달이 되었을 때아이는 저녁마다 울었다배고파서도 아니고 어디가아파서도 아니고아무 이유도 없이해질녘부터 밤까지 꼬박 세 시간 거품 같은 아이가 꺼져버릴까 봐나는 두 팔로 껴안고집 안을 수없이 돌며 물었다왜 그래. 왜 그래. 왜 그래. 내 눈물이 떨어져 아이의 눈물에 섞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문득 말해봤다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괜찮아. 괜찮아. 이제 괜찮아. 거짓말처럼아이의 울음이 그치진 않았지만누그러진 건 오히려 내 울음이었지만, 다만우연의 일치였겠지만며칠 뒤부터 아이는 저녁 울음을 멈췄다 서른 넘어야 그렇게 알았다내 안의 당신이 흐느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울부짖는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듯짜디짠 거품 같은 눈물을 향해괜찮아왜 그래, 가 아니라괜찮아. 이제 괜찮아. .. 2024. 10. 25. 연푸른 혀들 연푸른 혀들 김해자 이른 아침부터 참새도 할 말이 많다 중구난방 회합장이 된 이 집 지붕은 누구 것인가, 하품 늘어지게 하며 묻는 사이에도 우르르 날아오는 이 밭은 무료 급식소, 옆집 굴뚝에 세사는 딱새들이 쪼아 먹어도 군말이 없다 황금조팝 겨드랑이에서 노란 혀들이 솟아나고 있다 진군 명령 없어도 알아서 포복한다 잔디는 일렬횡대로 어깨를 겯고 부추도 장딴지에 힘을 준다 뿔이다 안간힘으로 밀어 올리는 푸른 비명이다 멍이다 숨어 지내던 갓도 깃대를 세우고 사철나무에 더부살이하던 더덕도 혀를 내민다 뽕나무 그늘 귀퉁이에서 꽃마리가 떨고 제비꽃이 수줍게 환호한다 등기권리증이 통하지 않는 거주지 이 공화국엔 형형색색 깃발들이 나부낀다 기지개 켠다 벌과 나비도 추위와 배고픔을 증명하지 않아도 기초수급은 된다.. 2024. 9. 26. 사랑하는 별 하나 사랑하는 별 하나 이성선 나도 별과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외로워 쳐다보면 눈 마주쳐 마음 비춰주는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나도 꽃이 될 수 있을까.세상일이 괴로워 쓸쓸히 밖으로 나서는 날에가슴에 화안히 안기어눈물짓듯 웃어주는 하얀 들꽃이 될 수 있을까. 가슴에 사랑하는 별 하나를 갖고 싶다.외로울 때 부르면 다가오는 별 하나를 갖고 싶다. 마음 어두운 밤 깊을수록우러러 쳐다보면반짝이는 그 맑은 눈빛으로 나를 씻어길을 비추어주는그런 사람 하나 갖고 싶다. - 물방울 우주(황금북, 2002) 2024. 8. 26. 이전 1 2 3 4 5 6 ··· 3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