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지/마음거울97 헛것을 따라다니다 헛것을 따라다니다 김형영 나는 내가 누군지 모르고 산다. 내가 꽃인데 꽃을 찾아다니는가 하면, 내가 바람인데 한 발짝도 나를 떠나지 못하고 스스로 울안에 갇혀 산다. 내가 만물과 함께 주인인데 이리 기웃 저리 기웃 한평생도 모자란 듯 기웃거리다가 나를 바로 보지 못하고 나는 나를 떠나 떠돌아다닌다. 내가 나무이고 내가 꽃이고 내가 향기인데 끝내 나는 내가 누군지 모르고 헛것을 따라다니다 그만 헛것이 되어 떠돌아다닌다. 나 없는 내가 되어 떠돌아다닌다. - 땅을 여는 꽃들(문학과 지성사, 2014) 2024. 3. 26. 밑번들 밑번들 송경동 믿지 말아야 할 말이 있다 ‘이번에는 정말’이라는 말 정치인과 지식인과 전문가들,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얼뜬 복음주의자 영웅주의자들이 잘 쓰는 말이다 이번에는 고치겠다 이번에는 진짜 바꾸겠다 이번에는 정말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확실히 엄정히 뿌리 끝까지 결단코 조치하겠다 ...저번에 모두 쫓아냈어야 할 사람들이다 이번 사람들은 저번과는 최소한 다른 사람들이어야 했다 4월도 5월도 6월도 7,8,9도 껍데기만 남은 저번 분들은 이제 그만 가고 속 허한 밑번들 끝번들만 남아라 - 내일 다시 쓰겠습니다(아시아,2023) 2024. 2. 26. 야훼님전 상서 야훼님전 상서 고정희 야훼님 한 사나이가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오랜 추위와 각고를 끝낸 사나이가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아주 멀리 떠날 줄 알았던 그, 이제는 다시 돌아 올 수 없는 곳으로 가버린 줄 알았던 그 사나이는 누더기 옷을 걸치고 섬광 같은 눈빛을 간직한 채 그의 기원을 묻어둔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그가 돌아 왔을 때 영원히 닫긴 줄 알았던 기도의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가 돌아 왔을 때 영원히 끝난 줄 알았던 자유의 휘파람 소리가 들판을 가로질러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가 돌아 왔을 때 우리들 기다림이 불기둥으로 일어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야훼님 그가 돌아온 마을과 지붕은 아직 어둡습니다. 그가 돌아온 교회당과 십자가는 더더욱 고독합니다. 그가 돌아온 들판과 전답은 이 무지막지한 .. 2024. 1. 26. 이전 1 2 3 4 5 6 7 8 ··· 3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