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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산 위에서 부는 바람100

<120호> 생각_잔디 별다름 없이 그저 초록이 새록새록, 꽃이 퐁퐁퐁 모두들 깨어나고, 저마다 반짝이고 있다. 낮에도, 밤에도. 그것이 위안이 된다. 내가 여전히 초록을 볼 수 있고, 꽃을 보며 안녕~!하고 인사할 수 있다는 것이. 정한 것 없어 보이는 계절이 흐를 때, 그 계절처럼 그렇게 여여히 그 흐름 따라 같이 흘러간다는 것이 나에게, 용기를 준다. 다만, 그뿐이라고. 그렇게 별것 없이 흘러가는 것이라고, 너그러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하다. 내 앞의 초록이, 내 옆의 꽃이... 이렇게 말하고 있는 지금, 욕실의 슬리퍼는 제멋대로 널부러져 있고, 어제의 의자는 그곳에 있지 않고 저쪽에 가있으며, 바구니 안에 들어가 있어야 할 손톱깎이는 탁자 위에 있으며, 조용히 잠시라도 더 있고 싶은데 식구들은 벌써부터 깨어 내 주위를 .. 2022. 4. 27.
<119호> 봄밤에 든 생각 _ 잔디(允) 오랜만에 호미를 잡았다. 빨래를 널을 때마다, 보이던 냉이를 캤다. 야무지게 호미질하여 하얗고 긴 뿌리까지 쑥 뽑아서, 캘 때마다 흙을 털고, 누런 잎까지 다듬어 곱게 바구니에 담았다. 냉이 옆에 피어난 망초잎은 쓰윽 베어 그 자리에서 다듬어 냉이 위에 다시, 얌전하게 포개어 놓았다. 그러고는 허리 펴고, 음식물 더미에 식사하러 온 냥이에게 말 걸고, 봄바람 사이에 서서 하늘을 좀 바라보다가 집에 들어와 냉이랑 망초잎을 여러 번 씻어 물에 소금을 한 꼬집 넣고 기다렸다가 팔팔 끓는 물에 넣어 데쳤다. 찬물에 얼른 헹구어 별다른 양념 없이 친정어머니의 간장, 들기름 한 숟가락, 참깨 좀 빻아 넣고 조물조물하여 봄을 먹었다. 지난해 여름 이사한 후, 처음 해보는 나물 뜯기와 나물 반찬이었다. 감개무량하였다... 2022. 3. 29.
<118호> 다시, 봄_잔디(允) 둘째 아이의 방. 그 방 왼쪽 귀퉁이에 놓여있는 연한 초록 책상. 그 책상 끝에 낮은 창. 그 창을 통해 바라보는 마을의 나란한 불빛들. 아주 가까운, 그리고 따뜻한. 무척 오랫동안 마주했던 풍경처럼 가깝다. 자전거를 타고 5분이면 닿는 작은 성당. 걸어서 5분이면 무언가 구입할 수 있는 작은 마트. 화요일마다 나오는 따뜻한 마을 두부와 콩나물. 출근하다 가끔 괜히 들르고 싶은 우리밀 빵가게 그리고, 그곳의 초콜릿 향이 진한 브라우니와 같이 마실 땐 돈 안받아 하며 손님 없이 한가할 때 커피를 함께 마시며, 나를 들어주는 모니카 언니. 아이들이 하교 후 어디 있나? 잘 있을까? 고민하지 않아도 돌봄 받을 수 있는 작은 도서관. 이 소소한 풍경을 맞이한 지 이제 여섯 달. 저 건너편의 마을의 불빛이 낯설지.. 2022. 2.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