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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산 위에서 부는 바람96

<108호> 작은 거인과 잔디_잔디(允) 우리 집 커다란 통창에 비친, 작은 과수원 너머에, 나란히 선 산벚나무 세 그루. 그중 가운데 서 있는 나무 혼자 꽃을 달고 있다. 작은 거인은 말한다. “쟤한테만 빛을 비추고 있는 듯 환허네.” 나는 ‘작은 거인의 정원’에 산다. 십일년째... 거의 매일 그 정원에 난 좁은 오솔길을 걸어 밖으로 나갔다 다시, 달빛 없이도 길을 찾아 걸을 수 있는 그 오솔길로 다시, 걸어들어온다. 두 손 가볍게 혹은 두 어깨 무겁게... 가끔은 마중 나온 막내를 맞이 하러 뛰는 발걸음으로... ‘작은 거인’은 자그마한 몸으로, 그가 말하는‘농장’,‘작은 거인의 정원’을 그의 남편과 함께 일구었다. 주로 소나무와 주목과 갖가지 낮은 꽃과 풀이 자라는 이 숲을 방문하는 사람들을 맞이하고, 먹이고, 보내는 과정을 이십 년쯤 .. 2021. 4. 26.
<107호> 그의 꽃자리를 기억함. _ 잔디(允) 진달래꽃 봉오리, 다시, 활짝 반짝이는, 지금, 한달 전에 돌아간, 그를 생각한다. 이숲에 피어있는 꽃이 없는 시절에도, 속절없이, 꽃자리를 남기고 떠난, 함께 앉아, 막걸리 잔 기울일 수 없는 거기로, 여행 떠난, 그가 남기고 간, 소리 없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 아주 가끔 조우하던, 그를 자꾸, 생각한다. 이십년 전의 어느 날, 남편이 그와 만났고, 친환경농사를 짓는 마을로 가자하였다. 그곳으로 가서, 농사도 짓고, 마을 어른들과 마을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자고 하였다. 어쩌면, 그에게 기대어(그래도, 마음 나눈 사람이 마을에 산다는 것은, 아주 든든하기에…) 그리고 우리는, 그 마을의 작은, 첫 집으로 깃들었다. 가끔 그의 귀틀집 거실에 앉아, 부부 네 명이 마주 보고 앉아, 막걸리와 함께 수다하였고.. 2021. 3. 30.
<106호> 풀과 잔디_잔디(允) 나는 이제 사랑을 알지 못한다라고 썼다가 나는 이제 사랑을 하지 않는다고도 썼다가, 나는 이제 내가 머릿속에 그려놓은 그를 사랑하기보다 현실의 그를, 바라보기 시작했다라고 다시, 고쳐 쓴다. 나를 꽉 쥐고 있는 한 생각이 쫙 펴질 때, 내 안에 다른 생각이 스스로 쫙 퍼졌으면 ... 오늘의 저 햇살처럼... - 잔디 그렇게 서로를 알아보고, 서로를 알아가고, 아이들을 함께 낳고, 고된 등에 번갈아가며 아이를 업어 키우고, 아이들을 보며 활짝 웃거나, 마음 앓이를 하며 아이들과 함께 자라고, 그들을 함께 바라보는 지금이, 사랑일까... 어느 때가 되면 이 음식이 먹고 싶겠지, 오늘은 뜨끈한 찌개 국물이 무거운 어깨에 위로를 주겠지, 오늘은 매콤한 해물볶음과 막걸리 한 잔이 마음을 풀어주겠지 싶은 날, 서로.. 2021. 2.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