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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산 위에서 부는 바람100

<112호> 세현과 잔디_잔디(允) 풀어도 풀어도 여전히 어딘가로 들어가지도 못한 짐과 짐 사이를 산책하듯, 거닐고 있을 무렵 그에게서 문자가 도착하였다. 오늘 출발할까요? 아, 그가 휴가를 맞아 나에게 온다고 했었지... 늘 혼자 보내던 휴가를 잠시, 나와 함께 보내고 싶다고 했었지... 일정을 서로 확인하고, 아이들이 격주 토요일 마다 참여하는 프로그램이 마치자마자 돌아오고, 남편과 비내리는 날의 짧은 데이트도 잠시 즐기고, 저녁을 잘 먹지 않는 그이지만, 저녁 식사로 옥수수 한 개를 먹고 싶다하여, 돌아오는 길에 옥수수를 구입하고, 서둘러, 드디어, 오후 여섯 시쯤 마당에 먼저 도착한 그와 만나, 눈으로 먼저 인사하고, 서로의 손을 꼭 잡았다. 스물 세 살 여름에 만나, 스물 다섯 살 겨울이 될 때까지 때때로 만나 서로를 나누던 그와.. 2021. 8. 30.
<111호> 아버지와 잔디_잔디(允) 느린 걸음으로 다가서고 멈추어 서서 바라보며 난 작은 꽃으로 살고 싶어 - 잔디 말하고 싶은 나와 하고픈 말을 삼키며 무거운 몸으로 온갖 말을 하면서도 목구멍까지 차오른,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고 서성이는 내가, 둘 다 내 안에 있다. 이 둘의 불일치는 나를 둘러싼 가족 공동체를 힘들게 했다고 나는 고백할 수 있다. 그 안에서 허우적거리던 나도 함께 힘들었음은 물론이다. 내 아버지와 행동 속도와 생각의 흐름이 매우 달라, ‘느려터진’, ‘물러터진’의 수식어를 아버지의 험한 입을 통해 내내 듣고 살던 나는, ‘공부’라는 도피처이자 놀이터에서 열심히 놀아 스무 살에 그의 슬하에서 겨우, 기어 나왔다. 그 이후 진정한 말하기와 사람에 관심을 두고(내 존재의 뿌리인 아버지를 이해하고 싶어서) 열심히, 노력,.. 2021. 7. 22.
<110호> 보선과 잔디_잔디(允) 유월의 어느 월요일 아침. 식구들이 내려놓은 먼지를 닦는다. 그도 이 시간 이렇게 있을까 상상하며... 슬퍼하며 억지로 먼지를 닦지 않아도 괜찮은 지금을 맞이한 그에게 축하를 보내며... 슬픈 마음에 먼지를 닦더라도, 그런 스스로를 안아줄 수 있는 마음 또한 자신 안에 있음을 발견한 것을 담뿍 축하하며... 혹은 먼지를 지금, 닦지 않고 있다가 닦고 싶을 때 닦기를 스스로에게 허락하는 그를 토닥토닥하며... 그리고 또 혹은, 먼지 닦을 마음이 있는 식구가 있다면 그에게 명랑하게 청소를 부탁하고, 또 거절하는 식구의 거절도 가뿐히 듣,는, 마음에 도착한 그에게 갈채를 뜨겁게, 보낸다. 레오 리오니의 ‘프레드릭’ 그림책 표지에, 프레드릭의 말들이 정갈히 쓰여져 있는 사진 두 장이 나에게 날아왔다. 누가 책에.. 2021. 6.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