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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산 위에서 부는 바람96

<2호> 지금 여기에서..._지나 이곳 어르신들께서 말씀하신다. 농사는 풀과의 전쟁이라고... 한해를 지나고 보니 풀은 정말이지 잘도 자란다. 전쟁이란 표현을 쓰시는 어르신들의 마음도 이해가 가지만, 나는 풀이 너무 예쁘다. 풀꽃은 더더욱... 이분들에게 잠시나마 마음속의 폭력이 사라지기를 바라는 마음에 이 영성적인 시 한편을 선사한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이곳으로 온지 이제 일 년이 되었다. 도시에서 여기 땅으로 처음에 왔을 때 살림살이는 비닐하우스에 넣어두고 컨테이너 두 대에서 생활을 시작하였다. 생활용수는 우물에서 끌어와 사용하고 목욕은 야외에서 달빛보며.... 그렇게 땅위의 삶이 시작되어 농부라는 이름으로 포도밭을 일구고 소량이긴 하지만 먹거리로 콩, 참깨, 들깨, 땅콩, 고구마, 배추,.. 2020. 8. 7.
<99호> 그대에게 보내는 단어 일곱 번째_잔디(允) 여름밤. 보슬비에 젖어 싱그러운 빛깔이던 낮에 만난 원추리꽃, 비비추, 벌개취꽃, 삼잎국화는 어떤 마음 빛깔로 이 밤을 보내고 있을까 생각합니다. 그믐이라 오늘밤 하늘은 무척 어두운데, 짙은 어두움이 무서울까? 짙은 어두움이 감싸주는 포근함과 은은함으로 한 밤의 서늘함을 견디고 있을까? 아주 작은 기운과 아주 사소한 말의 기운에도 미세한 균열이 나는 마음을 간직한 저는, 쉽게 흔들리는 날이 있어요. 그런 날에는 애써 숨을 자주 멈춥니다. 숨을 밖으로 내보내고는 들이쉬지 않고 코를 감싸쥐고, 가만히 있는 것이지요. 신체를 과학적으로 연구하시는 분들은 숨 참기의 여러 가지 잇점을 이유를 들어 설명하는데, 저는 그저 숨을 멈추었다 갈급함으로 한껏 숨을 들이쉴 때, 그리고 가슴에서 쌕쌕 소리가 나는 날, 내 안.. 2020. 7. 28.
<98호> 그대에게 보내는 단어 여섯 번째_잔디(允) 척박한 땅에 심었던 씨감자가 자라 이제, 남편과 함께 만삭의 몸으로 쭈그리고 앉아 캐고, 옮기고 감자를 수확하던 어머니는 밭에서의 고된 하루 일과를 다 마치고, 저녁도 다 해서 드시고, 설거지까지 하고나서 그 밤, 저를 낳았다고 하셨어요. 장마 지기 전에 감자를 다 캐고 나서 네가 태어났어. 참 착한 딸이지. 스무 살 즈음까지, ‘착한’이란 단어에 기대어 혹은 빠져나올 생각조차 없이, 아무런 의심 없이, 하고 싶은 말 지나보내고, 마음속으로 들어온 말 고스란히 쌓으며, 조용히 착하게 지내려고 했어요. 힘겹게 사느라 마음 아픈 엄마가 내가 던진 말에 마음 아파서 깨져 버릴까봐 담고, 누르고, 담고, 참고, 누르고... 그때는 그렇게 하고 있는지도 몰랐어요. 시간이 흐르고 살아가는 것이 점점 더 힘들기도 하.. 2020. 7.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