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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산 위에서 부는 바람113

<121호> 바라보기_允(잔디) 주방 작은 창 한 켠을 따라, 군데군데 아기감나무가 자라고 있는 긴 밭을 바라보며, 아이비가 한껏 줄기 끝에 새로운 아기 이파리를 키우고 있다. 매일 그를 바라보지만, 매일 신기하고 반짝이는 눈빛으로 그를 본다. 그러면서 문득 생각한다. 아, 나는 나를 그런 시선으로 보고 싶었던 걸까? 아침에 일어나, 일어나려고 마음먹어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저절로 5시 30분, 5시 40분께에 눈이 떠진다. 누군가 이제 일어나 너를 보아, 라고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을 거는 것처럼. 내 몸을 세차게 흔들어 깨우거나, 일어나는 것을 당연하게 강요하는 것 같은 목소리가 아니라, 호기심어린 목소리로 손 내밀며 어딘가로 초대하는 기운으로 내가 나를 깨운다. 자주 공책을 마주하며, 쓰기의 방식으로 나를 바라보아준 지.. 2022. 6. 2.
<120호> 생각_잔디 별다름 없이 그저 초록이 새록새록, 꽃이 퐁퐁퐁 모두들 깨어나고, 저마다 반짝이고 있다. 낮에도, 밤에도. 그것이 위안이 된다. 내가 여전히 초록을 볼 수 있고, 꽃을 보며 안녕~!하고 인사할 수 있다는 것이. 정한 것 없어 보이는 계절이 흐를 때, 그 계절처럼 그렇게 여여히 그 흐름 따라 같이 흘러간다는 것이 나에게, 용기를 준다. 다만, 그뿐이라고. 그렇게 별것 없이 흘러가는 것이라고, 너그러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하다. 내 앞의 초록이, 내 옆의 꽃이... 이렇게 말하고 있는 지금, 욕실의 슬리퍼는 제멋대로 널부러져 있고, 어제의 의자는 그곳에 있지 않고 저쪽에 가있으며, 바구니 안에 들어가 있어야 할 손톱깎이는 탁자 위에 있으며, 조용히 잠시라도 더 있고 싶은데 식구들은 벌써부터 깨어 내 주위를 .. 2022. 4. 27.
<119호> 봄밤에 든 생각 _ 잔디(允) 오랜만에 호미를 잡았다. 빨래를 널을 때마다, 보이던 냉이를 캤다. 야무지게 호미질하여 하얗고 긴 뿌리까지 쑥 뽑아서, 캘 때마다 흙을 털고, 누런 잎까지 다듬어 곱게 바구니에 담았다. 냉이 옆에 피어난 망초잎은 쓰윽 베어 그 자리에서 다듬어 냉이 위에 다시, 얌전하게 포개어 놓았다. 그러고는 허리 펴고, 음식물 더미에 식사하러 온 냥이에게 말 걸고, 봄바람 사이에 서서 하늘을 좀 바라보다가 집에 들어와 냉이랑 망초잎을 여러 번 씻어 물에 소금을 한 꼬집 넣고 기다렸다가 팔팔 끓는 물에 넣어 데쳤다. 찬물에 얼른 헹구어 별다른 양념 없이 친정어머니의 간장, 들기름 한 숟가락, 참깨 좀 빻아 넣고 조물조물하여 봄을 먹었다. 지난해 여름 이사한 후, 처음 해보는 나물 뜯기와 나물 반찬이었다. 감개무량하였다... 2022. 3.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