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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산 위에서 부는 바람96

<111호> 아버지와 잔디_잔디(允) 느린 걸음으로 다가서고 멈추어 서서 바라보며 난 작은 꽃으로 살고 싶어 - 잔디 말하고 싶은 나와 하고픈 말을 삼키며 무거운 몸으로 온갖 말을 하면서도 목구멍까지 차오른,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고 서성이는 내가, 둘 다 내 안에 있다. 이 둘의 불일치는 나를 둘러싼 가족 공동체를 힘들게 했다고 나는 고백할 수 있다. 그 안에서 허우적거리던 나도 함께 힘들었음은 물론이다. 내 아버지와 행동 속도와 생각의 흐름이 매우 달라, ‘느려터진’, ‘물러터진’의 수식어를 아버지의 험한 입을 통해 내내 듣고 살던 나는, ‘공부’라는 도피처이자 놀이터에서 열심히 놀아 스무 살에 그의 슬하에서 겨우, 기어 나왔다. 그 이후 진정한 말하기와 사람에 관심을 두고(내 존재의 뿌리인 아버지를 이해하고 싶어서) 열심히, 노력,.. 2021. 7. 22.
<110호> 보선과 잔디_잔디(允) 유월의 어느 월요일 아침. 식구들이 내려놓은 먼지를 닦는다. 그도 이 시간 이렇게 있을까 상상하며... 슬퍼하며 억지로 먼지를 닦지 않아도 괜찮은 지금을 맞이한 그에게 축하를 보내며... 슬픈 마음에 먼지를 닦더라도, 그런 스스로를 안아줄 수 있는 마음 또한 자신 안에 있음을 발견한 것을 담뿍 축하하며... 혹은 먼지를 지금, 닦지 않고 있다가 닦고 싶을 때 닦기를 스스로에게 허락하는 그를 토닥토닥하며... 그리고 또 혹은, 먼지 닦을 마음이 있는 식구가 있다면 그에게 명랑하게 청소를 부탁하고, 또 거절하는 식구의 거절도 가뿐히 듣,는, 마음에 도착한 그에게 갈채를 뜨겁게, 보낸다. 레오 리오니의 ‘프레드릭’ 그림책 표지에, 프레드릭의 말들이 정갈히 쓰여져 있는 사진 두 장이 나에게 날아왔다. 누가 책에.. 2021. 6. 28.
<109호> 풀과 잔디, 2_잔디(允) 봄이 와도, 여름이 와도, 마음이 따뜻해지지 않아 겨울처럼 차갑고 힘들 때, 마음 들여다보듯, 한밤 조용히 앉아, 되풀이해서 보던 드라마가 있었다. 보고 있으면, 그냥 아프고 슬퍼서, 차라리 내 발걸음이 저 사람들보다는 깊이 아프지 않다는 것이 위안이 되는 그런 드라마였다. 드라마 속의 배우들의 독백이 시처럼 다가와, 가만가만 삶에 대해 읊어주는 것 같아, 어떤 문장은 한동안 가슴 속에 머무르며 위로가 되기도 하였다. 그 드라마 속에서 아이가, 엄마에게 묻는다. - “엄마, 사랑이 뭘까?” 그 질문 끝에 바로 이어지는 이 노래. 그게 뭐든 궁금해 전부 구겨 놓은 기억들 매일 후회하고 매일 시작하는 사랑이란 고단해 사랑과 또 집착은 얼마나 다른 걸까 시간이 지나도 답이 없는 빈칸 사랑이란 궁금해 내일이 또.. 2021. 6.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