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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산 위에서 부는 바람100

<115호> 형과 잔디_잔디(允) 십 년하고도, 일 년을 더 살아온 산에서 떠나오기 며칠 전, 내가 그 산에 살기 훨씬 전부터 그 산을 키워 오신 형님은 너는 이제 이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서 살 때, 사람을 만나러 가는 거니까, 마을에 가서 어떤 사람을 만나든지 그에게서 너를 보고, 그에게서 그를 보되, 그와 너를 분리시켜 보기보다 그를 거울로 삼으라는 말씀을 찬찬히 들려 주셨더랬다. 지금 그 말씀을 천천히 곱씹어보니, 누구를 만나든지 그의 거울이 되어보라는 뜻인 듯 여겨진다. 이곳으로 이사 온 지, 석 달. 계절은 여름에서 가을로, 가을에서 겨울로 들어서는 문 가까이에 서 있다. 흐린 오후, 아침부터 물기를 머금었던 하늘에서 싸래기 같은 눈이 잠시 떨어졌으니... 목도리를 서둘러 찾아 둘러야 할 시절... 퇴근하면서 혹은 작은 도서.. 2021. 12. 6.
<114호> 윤과 잔디_윤(잔디) 다시 가을. 숨이 차오른다. 가을이 되기 전까지도 가끔씩은 숨이 차지만, 입추부터 입동까지 그 어느 때보다 자주 숨이 차다. 가을은 가을이라서 좋고, 안개 낀 아침은 아스라하여서 좋은데, 안개 낀 가을 아침은 눈을 뜨지 않아도 숨이 몸속으로 들어가는 깊이를 짐작하며, 아 오늘 안개가 끼었구나 생각하면 역시나 짙은 안개가... 그윽한 안개를 바라보며 앉아 하나 둘 셋 넷 숨 배 가득히,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머금었던 숨을 오므린 입을 통해 다시 밖으로... 5분 정도 반복하며 밤새 쉬었던 몸을 살며시 달래서 깨운다. 꽉차있던 숨도 갈아주고... 몸속에 숨을 한꺼번에 많이 넣으려 몸속의 숨을 끝까지 다 짜내고, 열 셀 동안 숨을 참았다가 들이마셔 횡격막을 한껏 펼쳐주기도 하고... 이 과정을 반복하며,.. 2021. 10. 26.
<113호> 어머니와 잔디_잔디(允) 절벽에서 어깨에 시멘트를 혹은 널빤지를 메고, 널빤지 위를 한 발 한 발 걷는 잔도공을 본다. 중국의 아름다운 절경에 위험하지만, 관광객들이 안전하게 다닐 수 있도록 길을 만드는 사람들. 땅 위에서 1400km 위의 지점에 그들의 직장이 있다. 하늘이 주신 직장이라 고맙다 말하며, 발아래에는 바로 낭떠러지인 그 좁은 길을 하루에도 수십 차례 발 디딜 곳을 발바닥으로 짚어가며 일하는 사람들을 본다. 그러다 한 사람을 떠올린다. 나의 어머니. 학교 가려면 가방 찾아 헤매다 결국은 집에서 동생들을 돌보아야 했던 그 사람. 가방을 숨겨둔 사람은 그의 어머니. 첫 출산 때, 동네 산파 역할을 하던 어머니를 믿고 있다가, 숨어버린 어머니를 기다리다, 급히 택시를 불러 조산원으로 가서 출산했던 그 사람. 앓는 어머니.. 2021. 9.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