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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산 위에서 부는 바람96

<제101호> 그대에게 보내는 단어, 여덟 번째. _잔디(允) 아직 열지 않은 초록 꽃봉오리를 기다란 줄기 끝에 달고 있는 구절초. 아침, 저녁으로 서늘한 공기 속에서 노란 꽃을 활짝 피우고, 그 어느 때보다 줄기도 왕성히 뻗고, 동글동글한 열매도 제법 맺는 호박. 오솔길을 오가며 드물게 만나는 도토리 한 알, 두 알. 혼자서 단풍 드는, 거실에서 마주 보이는 벚나무의 나뭇잎. 가지가 둥글게 휘어지도록 초록 열매를 달고 있는 모과나무. 뭉게뭉게 보송보송 연일 다른 그림을 그리는 하늘. 뾰족뾰족 봄의 새순처럼 돋아나 자라는 푸릇한 쪽파. 봄에 빨간 모자를 쓰고, 밭 한가운데에 파란 플라스틱 의자에 의지하여 앉아 계시던 콩밭 할아버지의 오전 여덟시 삼십 이분의 아침 산책. 반짝이는 초록 이파리 사이의 연두 빛 대추 열매. 바람에 흔들리며 살랑거리는, 빨랫줄에 달린 수건.. 2020. 9. 28.
<100호> 숨에게_잔디(允) 이천 십 삼년 4월의 첫 산위바람을 찾아 읽어보았어요. 아기 기저귀를 빨랫줄에 널 듯, 마음을 하늘에 널고 있는 저와 산 위에서의 일상을, 사소함을 나누고 싶다고 고백하는 저를 읽었어요. 그 아기는 열 살이 되었네요. 시간이 쌓이는 만큼 차곡차곡 쌓여가는 말에 눌려 그만 말하고 싶다 생각한 적도 많았어요. 기운 내려 꾸역꾸역 먹는 밥처럼 말을 꺼내는 날도 있었고, 꺼내지 않아도 후루룩 후루룩 국수 먹듯 유유히 말이 흘러나오는 날도 있었지요. 한 땀 한 땀 쓰다 보니 여기에 와 있습니다. 도착과 동시에 다시 떠나지만, 동시에 머무르는 이곳에. 가벼이 읽고, 홀가분하게 한 순간 건너가시기를 바라는 마음 담아 쓰기도 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쓰기도 하고, 팍팍한 일상에서 오레가노나 .. 2020. 9. 1.
<4호> 내 생애 첫 연필_잔디(允) ‘참 소중한 나’ ‘나는 진실하고 정직합니다.’ ‘마당에 봉숭아꽃이 한창입니다.’ ‘어제는 소나기가 내렸다.’ ‘오늘 아침 텃밭에 들깨모종을 하고 학교에 왔다.’ 우리 배움터 학습자분들이 요즘 익히고 계신 문장이다. 우리 배움터 학습자분들의 평균 나이는 칠십육세쯤 될 것이다. 그 분들은 나의 학생이시자 스승이신 분들, 나의 어머니이시자 우리들의 어여쁜, 사랑스러운 어머니이신 분들...... 우리집 큰 아이가 첫 돌을 맞이할 즈음 시작한 이일을 그 아이가 열 살이 된 지금까지 하고 있으니 거의 팔 년이란 시간을 어머님들과 배움을 함께 하고 있다. 도시살이에서 농촌살이로 삶의 주 공간을 옮길 때 우리 부부가 가졌던 꿈은 적은 양이더라도 자급자족하기, 부모님의 배려 덕분으로 가졌던 우리의 배움을 ‘문화나 교육.. 2020. 8.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