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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산 위에서 부는 바람96

<127호> 모노 드라마 모노드라마 尹 커피다운 커피를 마시지 못하고 하루를 지냈다는 생각에 아쉬움으로 커피머신 주위를 슬금거리던 나에게 커피를 제안하는 사람이 있었다. 솔깃하여 거절하지 않고 받아 마신 늦은 저녁의 옅고 구수한 커피는 어제를 오늘로 이어준다. 어제의 설레임이 오늘의 웃음으로 이어지듯 그렇게, 카페인 덕분에 오랜만에, 한밤중에 깨어 앉아 냉장고가 만드는 소음을 듣는다. 아이의 고른 숨소리도 들려온다, 뒤척이는 몸동작도 본다. 소리와 뒤척임이 있지만, 지금 이 모두가 고요이다. 자다가 깨어나 깜깜한 공기 속에 앉아 있을 때와는 다른 느낌이다. 왠지 충만한 지금이 좋다. 내일 피곤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은, 지금 없다. 칠월부터 시작된 금요일 밤의 데이트. 마을 언니 세 분과 금요일 밤 아홉 시에 모여 마음과 소리를 .. 2022. 12. 7.
<126호> 비와 거미줄 비와 거미줄 允 무작정 애쓰며 사는 것이 목표이던 때가 있었다. 그것은 나를 사랑하는 방식이기보다 나를 억누르는 방식이어서 어제도 슬펐고, 오늘도 슬프고, 내일도 슬플 예정의 흐름이었다는 걸 긴 시간 공부하면서도 알 수 없었다면, 한 2년 사이, 겉으로만 하던 공부를 (물론, 이렇게만 말하기 어려운 시간들이지만) 더 깊이 하게 된 이후, 이곳저곳에서 다시, 자기 사랑하는 공부를 하고 있는 시절인연이 내 주위에 응집하고 있다는 걸 느낀다. 그간에도 그 인연들은 나를 돕고 있었겠지만, 이제 그 인연을 알아보고 그 인연들 사이에서 공부하고 알아듣고, 일상에서 그것을 살아보고 넘어지고, 다시 그 구덩이에서 빠져나오며 다시 사는, 내가 좋다. 그걸 내가 볼 수 있어 좋다. 다섯 번의 선교사님들과의 피정을 마쳤다... 2022. 10. 27.
별 것 아닌 ​별 것 아닌. 잔디 친구와 세상을, 일상을 살며 깨달은 사소한 부분들을 신나서 이야기하다 보면 그의 경험과 나의 현실이 맞닿아 있어 더 신나고, 친구가 스스로를 깊이 사랑하며, 참사랑으로 자신을 보듬는 모습에 눈물이 나기도 하고, 내가 뭐라고 나에게 그 귀한 경험을 들려주나 내가 들을 자격이 있나 싶기도 하다가, 그 사랑의 본질을 알아듣는 내가 기특하고 친구의 깨달음에 공명한다는 사실이 기쁘고, 편안하여서 울컥 눈물이 나기도 한다. 헌데, 거기까지인 날이 있다. 아니, 허다하다. 그저 거기까지여서 뒤돌아보면, 현실은 늘 그렇다. 다 먹고 난 빈 요구르트병은 책상 위 모니터 앞에서 나를 쳐다보고 있고, 이 집엔 물컵 하나 설거지하는 사람이 없으며, 아이는 일주일 전에 약속한 오늘 함께 하기로 한 일정에 .. 2022. 9.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