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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산 위에서 부는 바람96

<130호> 길을 나섰다 윤 며칠 동안 아이랑 의논하고 알아보고, 오랜만의 외출이니 무언가 맛있는 것도 먹자고 이야기도 나누고, 설레며 몇 시간 동안의 둘만의 웃음 가득한 데이트를 기대하였다. 아이는 아침 일찍 일어나 머리도 감고, 나름 단정해 보이는 상의를 선택하여 입었으며, 오전 일정이 좀 지연되어도 가고자 하는 음식점이 문 여는 시간까지는 배고프지 않을 양 만큼의 아침 식사도 조금 하였다, 동네 빵집에 들러 유자차와 아메리카노를 주문하여 조금씩 마시고, 따뜻한 기운이 감도는 한가한 오전 빵집의 기운에 약간 취해 있다가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각자의 컵을 들고, 차에 타서는 웃으며 출발~~~! 목적지까지 가면서, 오늘 날씨에 비해 옷차림이 얇은 것 아닐까? 개학하기 전에 데이트할 수 있어서 좋다, 어제 저녁 식사 때 먹은 만.. 2023. 2. 27.
<129호> 포옹 포옹 윤 아침에 눈을 뜨고 습관처럼 벌떡 일어나 쌀항아리 뚜껑을 재빠르게 열지 않는다. 가만히 눈을 뜨고, 코로 숨 쉬고 있는지를 본다. 뒷목이 편안한지 살핀다. 손바닥도 좀 비벼주고, 얼굴이 붓지는 않았는지 살피며 쓸어주고, 손가락이 붓지는 않았는지, 발뒤꿈치도 좀 만져주고, 왼손은 오른쪽 어깨에 오른손은 왼손 어깨에 올려 감싸 안는다. 토닥토닥. 그리고는 조용히 말해준다. 다시, 아침 맞은 것을 축하해. 오늘도 잘 부탁해. 때론 작은 목소리로, 때론 머릿속으로 속삭인다. 천천히 일어나 숨 들이마시고, 숨 내쉬며 겨울 창밖을 좀 바라보고, 전기주전자에 물을 올리고, 의자에 앉아 기다린다. 물이 데워지면 컵에 반쯤 담고, 찬물을 그 위에 담아 조금씩 조금씩 마신다. 천천히 해도 괜찮아, 말해준다. 나에게.. 2023. 1. 30.
<128호> 연습, 쓰기, 읽기 연습, 쓰기, 읽기 允 날아라 병아리* 병아리는 알 속에서 궁금했어 알 밖의 세상이 그래서 어느 날 겨우겨우 세상에 나왔지 세상을 돌아다녀 보니 쌀 한 알 먹는 것조차 물 한 모금 마시는 것조차 마음 한 조각 얻는 것조차 쉽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지 그래서 병아리는 점점 커다란 알껍질을 만들었어 다른 병아리는 볼 수 없는 아마 병아리 자신도 알 수 없었을 거야 처음에는 단단해져 가는 알껍질 속에서 병아리는 이제 곧 병아리보다 ‘닭’이라는 이름으로 부를 텐데 어떻게 하지? 생각을 하지 말아볼까? 생각하지 않으면 무슨 의미로 세상을 살아가지? 조용히 있는 것 같아 보이던 병아리는 생각 했어 생각하고 또 생각했지 너무 답답하고 힘들어 외로워 어떡하지? 그러던 어느 날, 지나가는 바람이 네 탓이 아니야, 라고 .. 2022. 12.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