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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현경이랑 세상읽기34

<125호> 어정쩡한 시간 속에 어정쩡한 시간 속에 박현경(화가) ‘거기서 살아갈 수 있을까?’ 그 최종적인 답을 얻으려고 떠났다. 교사인 내게 비교적 자유로운 기간인 1월, 프랑스 남동부 그르노블의 대학교에서 어학 수업을 듣고 지역 노숙인 쉼터에서 봉사활동을 했다. 한 달 동안 현지인들과 부대껴 살며 얻은 결론은, 할 만하겠다는 것. ‘좀 외로울 때도 있겠지만, 살아갈 수 있겠어.’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를 타기 전 이미 마음을 굳혔다. ‘앞으로 일 년간 차근차근 준비하자. 유학 절차를 밟아서 내년에 다시 오자. 그리고 공부하면서 여기 뿌리를 내리는 거다.’ 그렇게 귀국해 2월을 맞았다. 전공에 딱히 열정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간절히 ‘떠나고 싶어서’ 뚫어 온 길. 지금까지의 삶을 벗어 던진 채 훌훌 멀리 날기 위해 수년째 독하게 .. 2022. 9. 26.
<124호> 그르노블을 생각하면 _ 글쓴이: 박현경(화가) “앞으로 그르노블을 생각할 때마다 가장 먼저 너를 떠올릴 거야.” 지뻬(J. P.)에게 이렇게 말하며 산 아래로 펼쳐진 그르노블 시내를 내려다보았다. 고개를 들어 지뻬를 봤을 때 그는 한 손을 제 가슴에 얹고서 고맙다고, 고맙다고 말했다. 2015년 1월 28일 오후의 일이다. 2015년 1월 한 달을 프랑스 남동부의 그르노블이란 도시에서 지냈다. 하루 중 절반은 대학교에서 어학 강의를 듣고 나머지 시간에는 봉사활동을 했다. 내가 봉사활동을 한 곳은 주거 환경이 취약한 분들이나 노숙인분들이 찾아와 무료로 빨래와 샤워를 하는 ‘뿌앙도(Point d’Eau)’라는 이름의 쉼터였다. 뿌앙도(Point d’Eau)는 우리말로 ‘샘’이라는 뜻이다. 나는 이 ‘샘’에서, 빨래나 샤워를 하러 오신 분들의 이름을 순서.. 2022. 8. 31.
<123호> 봄날의 햇살 / 글쓴이: 박현경(화가) 안녕하세요. OO여중을 졸업한 R이라고 합니다. 제가 그리워하던 친구를 찾던 중에 혹 맞나 싶어 연락드립니다. 감기 조심하세요. 감사합니다. 2019년 11월 19일 메일을 확인하는 순간, 머릿속이 환해졌다. 세상에, R이 나를 찾아 주다니! 나는 반가워서 바로 답장을 했고 우리는 만났다. 함께 저녁을 먹고 차를 마시며 중학교 때 얘기, 지금까지 살아온 얘기 등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이후로도 R과 나는 연락하며 지낸다. 1999년 10월 17일 일요일 나에게 신선한 힘을 주는 R. 하지만 그 애는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부담스러운 존재 혹은, 숙제를 잘 빌려 주는 애니까 친근하게 대하지만 사실은 별 볼 일 없는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진 않을까. 하지만 나는 R이 그렇게 이해타산적이거나 줏대 없진 않을.. 2022. 8.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