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지/현경이랑 세상읽기34 <128호> 감았던 눈을 와짝 뜰 때 감았던 눈을 와짝 뜰 때 박현경(화가) 태양을 사모하는 아이들아 별을 사랑하는 아이들아 밤이 어두웠는데 눈 감고 가거라. 가진 바 씨앗을 뿌리면서 가거라. 발부리에 돌이 채이거든 감았던 눈을 와짝 떠라. - 윤동주, 아침에 눈을 뜨면 간단한 명상을 하고, 뜨끈한 두유를 마시며 책을 읽거나 일기를 쓴다. 고양이들 아침밥과 물을 챙겨 주고, 고양이들 화장실을 청소해 준다. 요가원에 가는 날은 요가를 하며 땀을 흠뻑 흘리고 집에 와, 천천히 점심밥을 지어 먹는다. 요가복을 빨아 널고 오후 작업을 시작한다. 요가원에 가지 않는 날은 아침 일찍부터 작업에 들어가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그날의 작업을 마치고 시간이 남으면 걸어서 남편의 카페에 간다. 차 한 잔을 홀짝이며 전시 준비 일을 한다. 아침, 저녁, 밤마다.. 2022. 12. 26. <127호> 몸 몸 박현경(화가) 1. 타인의 몸 매주 한 번씩 누드 크로키 모임에 참여해 그림을 그린다. 1분 또는 3분마다 바뀌는 포즈에 따라, 한눈팔 겨를 없이 모델을 관찰하고 선을 그으며 몰입의 시간을 보낸다. 그러면서 느끼고 또 느끼는 것. 아름답구나. 있는 그대로 참 아름답구나. 마른 몸은 마른 대로, 살찐 몸은 살찐 대로, 배 나왔으면 배 나온 대로, 안 나왔으면 안 나온 대로, 흉터가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여자든 남자든 어떤 성별이든……. 아름답지 않은 몸은 어디에도 없구나. 흔한 레토릭으로 주워섬기는 말이 아니라, 경험을 토대로 진심을 다해 증언하건대, 아름답구나. 있는 그대로 참 아름답구나. 이렇게 느끼며 끄덕이다 보면 생각은 자연스레 ‘나의 몸’으로 향한다. 2. 나의 몸 고백하건대.. 2022. 12. 7. <126호> 내 친구를 소개합니다. 내 친구를 소개합니다 박현경(화가) * 이 글은 그림 ‘삶 26’을 감상하며 읽으셔야 더 재미있습니다. 아래의 QR코드를 스캔하시면 그림 ‘삶 26’을 컬러로 보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축축한 어둠 속에서 만났다. 어둠이 그토록 깊고 질퍼덕하지 않았다면, 영영 서로를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즈음엔 검고 굵은 빗방울이 하염없이 내렸다. 하늘은 어두웠고 주위는 붉었다. 하루하루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했다. 그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씩. 그렇게 조금씩 나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두렵고 또 두려웠다. 모든 일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잘 되고 있음을 알았지만, 불안은 도무지 날 놓아주지 않았다. 무력감이 깊은 늪처럼 내 두 발을 잡아끌었다. 아래로 아래로 무겁게 가라앉았다. 어디가 바닥인지 알 수 없었.. 2022. 10. 27. 이전 1 ··· 6 7 8 9 10 11 1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