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지687 어떤 기다림 어떤 기다림잔디 빨래를 널으러 뒷마당에서 빨랫줄로 걸어가는 짧은 거리에도 내 등 뒤에서 툭, 하고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주홍빛 해가 하나 뒷마당에 깔아놓은 파쇄석 위에 떨어져 있다. 해를 가만히 들여다보다 꼭지를 떼어내고 반을 갈라 조금 먹어본다. 어제 먹은 것보다 엊그제 먹어본 것보다 달다. 아무도 부르지 않고 혼자만 먹는다. 먹는 동안에도 아까 해 떨어진 옆자리에 해가 또 떨어진다. 냉큼 주워 조금 맛보고 다시 혼자만 먹는다. 온종일 뱃속에 든 두 해님 덕분에 온기가 그득하겠다 싶다. 그래도 가을은 기어이 돌아오고야 말아서 퇴근이 조금이라도 늦으면 주홍빛 해의 빛깔을 닮은 하루에 한 번뿐인, 노을이를 놓치기 일쑤다. 그래서 피부가 진짜 가을이가 돌아왔나 보다 느끼던 날부터는 퇴근할 때, 동료들.. 2025. 9. 25. 시적인 사람 친구와 캔맥주를 두고 이야기를 나누던 중 로버트 레드포드를 떠올렸다.“페이스북에 누가 로버트 레드포드를 추모하며 써놓은 글인데 시적인 사람 혹은 산문적인 사람 가운데 로버트 레드포드는 시적인 사람이었다고. 그 문장이 마음에 들더라. 시적인 사람.”친구는 말했다.“맞아 그래. 함께 영화에 나왔던 폴 뉴먼은 산문적인 사람이야. 사업을 해서 큰돈을 모았고 사후에도 여전히 돈을 모으고 있지. 그런데 로버트 레드포드는 일을 벌였어. 독립영화제도 열고 NGO운동도 하고 그리고 정치적 발언도 서슴없이 했지”나는 말했다.“그게 그렇게도 연결이 되는구나.”그렇다면 나는 시적인 사람으로 기억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캔맥주를 앞에 두고. 2025. 9. 25. 왕순이 발톱 왕순이 발톱박현경(화가, 교사) 왕순이 발톱. 최근 우리 부부의 이슈였다. 고양이 왕순이는 올해 열세 살이다. 젊었을 때는 스크래처를 신나게 박박 긁어 대며 스스로 발톱 관리를 하더니, 나이를 먹어서인지 요즘은 활동량이 적어지면서 스크래처를 잘 안 긁어 발톱이 꽤 자랐다. 하필이면 내향성 발톱이라 발바닥 살을 파고들어 왕순이가 아파했다. 그래서 몇 달 전엔 고양이 미용 하는 곳에 데려가 발톱을 깎아 달라고 했는데, 발톱 깎기를 마치신 미용사분은 왕순이 성질이 보통이 아니라며 이리 저리 빨갛게 할퀴인 팔뚝을 보여 주셨다. 미용사분께 죄송했고, 또 평소엔 순둥이인 왕순이가 이런 공격성을 보였을 정도면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전쟁 같은 발톱 정리를 마치고 어느새 시간이 흘러 .. 2025. 9. 25. 이전 1 2 3 4 5 6 ··· 22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