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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776

봉순이는 봉순이는박현경(화가, 교사) 봉순이는 고등어다. 우리 집에 사는 코리안숏헤어 고등어 고양이다. 이마 아래 얼굴과 옆구리와 네 다리와 발은 하얗다. 이마 위쪽으로 두 귀와 뒤통수를 지나 등허리를 거쳐서 길고 우아한 꼬리까지는 고등어 등 색깔이다. 분홍 코 양옆으론 엷은 갈색 반점이 있다. 수염은 하얗고 길고 빳빳하다. 눈동자는 에메랄드 빛깔이다. 봉순이는 2020년 대한민국 충청북도 청주시 사창동 어느 골목에서 태어났다. 태어난 지 4개월쯤 됐을 때 길을 건너다 차에 치여 골반을 다쳤다. 구조돼서 안락사당할 위기에 처했다가 우리 집에 오게 됐다. 우리 집엔 기다란 회색 털을 지닌 페르시아 귀족 혈통 왕순이가 오래전부터 살고 있었다. 귀부인 왕순이를 처음 봤을 때 꾀죄죄한 봉순이는 무척 반가워했다. 먼 이.. 2026. 7. 24.
일종의 유희 일종의 유희잔디 이제 일어나 늦은 점심을 먹고 나서 막 설거지 하려던 때, 들려오는 누군가의 목소리. “얼른 나가게 설거지 좀 해.” 단전에서 끓어올라 얼굴까지 뜨겁게 달아오르게 하는 어떤 감정. 내내 그 뜨거움으로 설거지를 마치고 나서 말가진 그릇을 바라보던 기억, 그 감정이 밖으로 나가지 않게 애써 감추던 그 때의 나. 그리고 또 하나. 일요일 아침 여유로이 방청소를 하려고 빗자루를 찾아 막 비질을 하려는 순간, 마루에서 들려오는 소리. “일요일이니까 대청소 좀 하자.” 들고 있던 빗자루를 방 어딘가에 숨기고 나도 숨고 싶은 순간을 맞이하는 마음. 그 마음을 숨기고 “네”, 라고 대답하고 꾸역꾸역 비질을 하고 물걸레질을 하고나서야 말끔해진 방바닥에 누워 긴 한숨을 쉬었던 그 때의 나. 열 몇 살의 .. 2026. 7. 24.
너는 나를 자빠뜨리고야 만다 너는 나를 자빠뜨리고야 만다 박윤준(음성노동인권센터 상담실장) 얼굴을 잔뜩 구기며 시끄럽게 울어대는 해인의 벌거벗은 몸을 안은 날, 나는 감전된 사람처럼 한순간에 완전히 다른 세계로 진입했다. 이 일은 해리포터가 호그와트행 기차를 타기 위해 플랫폼 9와 10 사이 벽에 용감하게 돌진하는 쪽보다는 영화 나니아 연대기> 주인공들이 숨바꼭질을 하다 숨은 벽장 속에서 뒷걸음치다가 철퍼덕, 눈으로 뒤덮인 마법의 세계에 뒤로 자빠진 쪽에 가까웠다.나는 한동안 진흙탕에 바퀴가 빠진 자동차처럼 굴었다. “왜 이렇게 안 나가!” 엑셀을 아무리 밟아도 전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오히려 속도를 내면 낼수록 내 발 아래 놓인 웅덩이는 점점 깊어졌다. 나는 이곳에 멈춰서 있는데, 이 세상은 원래 제 속도로 돌아가는 것만.. 2026. 7.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