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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호> 제목: 비겁함에 대하여 (1) _ 박현경(화가) ※ 아래의 이야기는 픽션일 수 있으며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 및 단체는 실제와 무관한 허구일 수 있습니다. 동시에 이 이야기는 바로 당신의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상황 1] 교장과 교감의 지시가 불합리할 뿐 아니라 황당하기까지 하다는 데에는 다들 이견이 없어 보였다. 중간고사, 기말고사 시험지 양식을 뜯어고쳐 문항 배치, 엔터 치는 자리, 스페이스 바 치는 자리 등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모조리 통일하라는 거였다. 평가 업무 담당 부장 교사인 K가 보기에 이는, 과목별 특성을 고려하지 않는 무지한 처사인 동시에, 교사의 전문성과 자율성에 대한 침해이기도 했다. 더욱이 교사들이 문제를 출제할 때 이런 자잘한 형식 규칙에 정신을 빼앗길수록 정작 중요한 내용 면에서 실수를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걸 K는 지난.. 2022. 4. 27.
<120호> 나를 돌보는 연습(3) 일상적이지 않은 일상아주 천천한 속도로 이 글을 읽길 바라며_동글이 2019년 4월 25일 체스키크롬로프의 아침 분주하고 바쁜 준비시간을 거치면 조용하고 평화로운 조식시간이 된다. 바쁘게 움직이며 또 무얼해야할지 고개를 둘러보고 있을 때 Mr.Ree는 눈빛으로 나를 부르곤 말한다. “그냥 가만히 멈추고, 이 순간을 즐기면 돼.” ​ 작은 나무 의자에 조그마한 방석이 있는 아담한 장소. 손님이 나를 볼 수 없는 곳에 앉아서 잔잔히 흘러나오는 피아노 연주곡과 Mr.Ree 이야기를 듣는다. 가만히 이곳에 앉아서 아무 얘기나 듣고 있는데 괜히 행복해서 눈물이 맺힌다. 그냥, 지금 이 순간만 생각할 수 있어서 참 좋다. 나는 나를 제일 먼저 생각할 수 있을까 어떤 조건이 주어지지 않아도 나로서 행복할 수 있을까 내가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오늘은 뭘 먹을까, 내일은 어딜가볼까.. 2022. 4. 27.
<120호> 생각_잔디 별다름 없이 그저 초록이 새록새록, 꽃이 퐁퐁퐁 모두들 깨어나고, 저마다 반짝이고 있다. 낮에도, 밤에도. 그것이 위안이 된다. 내가 여전히 초록을 볼 수 있고, 꽃을 보며 안녕~!하고 인사할 수 있다는 것이. 정한 것 없어 보이는 계절이 흐를 때, 그 계절처럼 그렇게 여여히 그 흐름 따라 같이 흘러간다는 것이 나에게, 용기를 준다. 다만, 그뿐이라고. 그렇게 별것 없이 흘러가는 것이라고, 너그러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하다. 내 앞의 초록이, 내 옆의 꽃이... 이렇게 말하고 있는 지금, 욕실의 슬리퍼는 제멋대로 널부러져 있고, 어제의 의자는 그곳에 있지 않고 저쪽에 가있으며, 바구니 안에 들어가 있어야 할 손톱깎이는 탁자 위에 있으며, 조용히 잠시라도 더 있고 싶은데 식구들은 벌써부터 깨어 내 주위를 .. 2022. 4.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