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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호> 위로_允(잔디) 어쩔 수 없이 머뭇거릴 때가 있다. 지금까지 듣거나 공부해 온 훌륭한 정보나 지식이 내 안에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되어 나오지 못하고 머릿속에서만 빙빙 돌거나, 하려고 하는 말이 목까지 차올라 있지만 그저 거기까지 일 때, 20분 전까지 부르던 노래의 첫 음이 기억나지 않아 발표 순서가 시작되어도 발표를 시작하지 못해 이마에 땀만 흐를 때, 내 딴에는 이리저리 궁리하며 열심히 쓴다고 쓰고 퇴고도 했는데, 무얼 썼는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모르겠다고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 때 그래서, 내가 본 것을 독자도 똑같이 볼 수 있게 쓰세요 라는 문장이 무슨 문장인지 알지만, 그렇게 쓰려고 했지만 그곳이 어디인지 몰라 가 닿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일 때, 원고를 쓰긴 써야 하는데 하고 싶은.. 2022. 8. 31.
<124호> 선 넘기_동글이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나의 우울은 결국 또 나를 잡아먹고, 나는 당신을 잃어도 괜찮을 것처럼 저-기로 멀어집니다. 나는 나를 돌보는 일이 꼭 당신을 떠나보내야 하는 일인 양 애써 가까워진 당신을 밀어내고 또 선을 긋습니다. 이따금 내가 느끼는 마음의 아픔보다 당신 아픔이 더 아프게 느껴지는 까닭은 나는 나를 잃어도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내 아픔을 나처럼 함께 아파해주는 당신을 만나고 싶기 때문입니다. 나도 하기 어려운 일을 바라고 기다리는 것은 결국 나를 외롭게 만드는 일인 것을 잘 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또 나를 외롭게 할 겁니다. 이따금 선을 넘어 오는 이들을 반기며 기뻐도 할 겁니다. 내가 좋아하는 이들은 저-기 있습니다. 나는 이만큼 선 긋고 여-기 있습니다. 깊디 .. 2022. 8. 31.
<124호> 그르노블을 생각하면 _ 글쓴이: 박현경(화가) “앞으로 그르노블을 생각할 때마다 가장 먼저 너를 떠올릴 거야.” 지뻬(J. P.)에게 이렇게 말하며 산 아래로 펼쳐진 그르노블 시내를 내려다보았다. 고개를 들어 지뻬를 봤을 때 그는 한 손을 제 가슴에 얹고서 고맙다고, 고맙다고 말했다. 2015년 1월 28일 오후의 일이다. 2015년 1월 한 달을 프랑스 남동부의 그르노블이란 도시에서 지냈다. 하루 중 절반은 대학교에서 어학 강의를 듣고 나머지 시간에는 봉사활동을 했다. 내가 봉사활동을 한 곳은 주거 환경이 취약한 분들이나 노숙인분들이 찾아와 무료로 빨래와 샤워를 하는 ‘뿌앙도(Point d’Eau)’라는 이름의 쉼터였다. 뿌앙도(Point d’Eau)는 우리말로 ‘샘’이라는 뜻이다. 나는 이 ‘샘’에서, 빨래나 샤워를 하러 오신 분들의 이름을 순서.. 2022. 8.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