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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상한 몸 – 장애 여성의 노동, 관계, 고통, 쾌락에 대하여 어쩌면 이상한 몸 – 장애 여성의 노동, 관계, 고통, 쾌락에 대하여 장애여성공감 지음 이구원 페미니즘에 대한 책을 읽으며 나의 이야기로 여긴 적이 많지 않았다. 대부분은 나와 다른, 내가 이해해야 하는 타인의 이야기로 책을 읽어왔다. 그러다 보니 약간의 이질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 책은 많은 부분에서 나의 이야기, 일상의 삶과 맞닿아 있었다. 활동지원사와의 관계를 포함한 활동지원제도에 대한 고민, 인간관계의 어려움, 내 삶의 의미와 존재방식, 건강의 변화와 활동 방향, 성적욕구에 이르기까지 내가 해 왔던 고민들과 말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이 담겨 있었다. 그래서일까 책을 읽는 내내 조금은 설렜고 일종의 카타르시스 또한 군데군데 느낄 수 있었다. 물론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장애 여성으로써의 삶에 .. 2023. 12. 26.
화염경배 화염경배 이면우 보일러 새벽 가동 중 화염투시구로 연소실을 본다 고맙다 저 불길, 참 오래 날 먹여 살렸다 밥, 돼지고기, 공납금이 다 저기서 나왔다 녹차의 쓸쓸함도 따라나왔다 내 가족의 웃음, 눈물이 저 불길 속에 함께 타올랐다. 불길 속에서, 마술처럼 음식을 끄집어 내는 여자를 경배하듯 나는 불길처럼 일찍 붉은 마음을 들어 바쳤다 불길과 여자는 함께 뜨겁고 서늘하다 나는 나지막히 말을 건넨다 그래, 지금처럼 나와 가족을 지켜다오 때가 되면 육신을 들어 네게 바치겠다. - 아무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창비 2001) 2023. 12. 26.
무해한 무해한 잔디 나는 무해한 존재이고 싶었다. 언 강 위에 떠 있는 배처럼 한겨울 움직이지 못하여도 한탄하거나 춥다고 말하지 않으며, 따뜻한 봄이 되어 물이 흐를 때까지 기다렸다가 함께 흐르는 존재. 한탄은 사치이고, 춥다고 말하는 것은 소음이라 여겼다. 혹은 내 안의 온기로 바깥의 차가움을 충분히 견디어낼 수 있다고 자만했던 것 같기도 하다. 겨울날에도 해는 늘 떠오르고 등 뒤로 머리 위로 닿는 햇살의 온기로 충분하다고 스스로에게 외치며, 내가 생각한 대로 삶이 흐르지 않아도, 삶이 흘러도 그저 묵묵히 흘러 여기까지 왔다. 무해한 존재이고 싶다는 마음으로. 무해하다는 것은 무엇일까? 최대한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것일까? 최대한 에너지를 아껴 쓰고, 그 에너지 앞에 나를 떨게 하는 것일까? 최대한 물을 .. 2023. 12.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