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거울54 <제94호> 벽제에서_박윤준(음성노동인권센터 활동가, 회원) 그곳은 벽제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싸늘한 몸이 불구덩이에 들어갔다가 백골과 뼈부스러기가 되어나왔다. 백골은 살짝 힘을 주었을 뿐인데 바스라졌다. 나를 낳고 안았으며 장난치며 씨름을 하던 몸. 가끔은 때리고, 자주 소파위에 누워있었던 몸. 해고 통보를 받은 뒤엔 실없이 웃고, 암 선고를 받은 이후엔 말 없이 창밖을 응시하던 몸. 그 큰 몸이 산소호흡기를 달고 누워있던 중환자실에서는 왜소해보였다. 그리고 그 몸이 산산조각으로 으스러지는 순간은 내가 안주해오던 세계가 부서지기엔 너무 감쪽같이 짧았다. 남은 세 가족에게 닥친 시간들은 날카로운 파편이 되어 생채기를 내었다. 일상을 받치던 커다란 기둥 하나가 무너져 내린 느낌이었다. 그의 몸은 사라졌으나, 나의 의식과 몸은 ‘아빠가 있다’고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 2020. 2. 26. <93호> 바로 이런 좋은 이유로_박현경(교사) ‘왜 이렇게 내가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상황에 처하게 됐을까 생각해 본다.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겠지. 그럴 것이다. 지금의 이 일에도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것도 아주 좋은 이유가……. 괴로워할 만큼 괴로워하고 나면, 이 일도 순조로이 지나갈 것이다.’ 2020년 1월 5일, 힘겹게 마음을 추슬러 가며 일기장에 적은 문장들이다. 마땅히 수개월 전에 해 두었어야 하는 행정적 처리 한 가지를 내가 놓쳤으며 이제라도 어서 이를 수습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된 건 2019년 12월 31일 늦은 오후였다. 겨울방학식을 마치고 조퇴했던 나는 상황을 파악하자마자 부랴부랴 학교로 복귀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일주일여가 지난 1월 8일 오전에야 이 일은 해결되었다. 일을 처리하는 그 기간 내내 나는 심한 열 감기를 앓듯 .. 2020. 1. 28. <제92호> 시를 들려줘서 고마워_박현경(교사) ‘지각시’. 지각하면 외우는 시(詩). 우리 반 교실에서 자주 쓰이는 단어다. 처음 교사가 됐을 때, 반복해서 지각을 하는 학생들에게 자꾸 화가 났다. 그 학생들에게는 지각하는 습관을 안 고치면 나중에 사회생활을 어떻게 하려고 그러느냐, 등교 시간도 하나의 약속인데 약속을 계속 어기면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이 된다는 등의 따분한 이야기를 격앙된 어조로 늘어놓곤 했지만, 정말로 그들의 미래가 걱정돼서 화를 낸 건 아니었다. 돌이켜 보면 내 분노의 이유는 두려움이었다. ‘나의 지속적인 지도에도 불구하고 이 친구들이 행동을 바꾸지 않고 계속해서 지각을 한다는 건 내가 무능한 교사라는 증거가 아닐까? 이러다 내 통제를 벗어나는 학생들이 점점 더 늘어나면 어쩌지?’ 지금 생각하면 안쓰럽고 웃음이 나온다. 자기 고유.. 2020. 1. 8. 이전 1 ··· 3 4 5 6 7 8 9 ··· 18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