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거울54 <제98호> 책임이라는 정치적인 과제_박윤준(음성노동인권센터 활동가, 회원) 그럴 때가 있다. 내가 잘못한 거라고, 나의 부족함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인정하기 싫을 때가 있다. 내가 비겁해서, 무책임해서, 사려 깊지 못해서 그 사람에게 어떤 손상을 만들었음을 인정하기 싫을 때가 있다. 그냥, 나는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덮어두고 믿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있을 때가 있다. 그때는 세상에서 가장 무겁고 단단한 쇠붙이들을 불러 모아 방패를 만들고 웅크리고 앉는다. 불안한 마음은 몸과 마음을 천근만근 무겁게 만든다. 아, 내가 별로인 사람이구나. 가슴 깊이 사랑하는 이와 시간을 보낼수록 깨달아가는 진실은 황홀한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마음 속 가장 밑바닥에 있는 부끄럽고 감추고 싶은 납작한 쇠붙이를 꺼내서 당신과 내가 함께 확인하는 시간들이었다. 내가 그 사람을 아프게 하는 것은 그 납작.. 2020. 7. 28. <제97호> 오일팔에는 잠시 멈추기로 한다._박윤준(음성노동인권센터 활동가, 회원) 민주주의, 독재타도, 계급투쟁, 인민해방 … 이념적인 구호들은 꽤 오랜 시간 한국 사람들을 지배해왔다. 그것들은 머리 위에 머무는 커다란 구름과도 같아서 사람들의 하늘을 규정했고, 날씨를 만들었고, 그에 걸맞는 행동들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같은 하늘을 가진 사람들을 동지라 불렀다. 구름은 바람이 불어옴에 따라 흘러갔고, 구름이 떠나간 뒤 마른하늘 아래 선 사람들 중 몇몇은 구름 없이 화창한 하늘을 괴로워했다. 그들은 숲 속으로, 동굴로, 절 지붕 밑으로 들어가 방 한 칸 짜리 구름이라도 소유하고자 했다. ‘한 낱’구름은 한 인간의 마음속에 비슷한 모양의 구름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어떤 인간은 자신의 키가 하늘까지 닿는다고 착각하기도 했다. 마음 속 구름과 머리 위의 구름은 서로 부딪히며 천둥소리를 내었.. 2020. 7. 28. <제95호> 지랄탕 한 모금 하실래예?박윤준(음성노동인권센터 활동가, 회원) 4년이 넘어도 폰을 바꾸지 않고(잃어버리지 않고, 부수지 않고) 잘 쓰던 나였다. 그런 내가 1년간 사용하던 폰을 네 번 바꿨다. 하나는 재작년 여자친구와 연말 여행 중에 보도블럭 위에 떨어뜨렸는데 떨어진 각도와 세기가 매우 적당하여 액정이 산산조각 났다. 바꾸지 않고 몇 개월을 꿋꿋이 쓰다가 작년 가을이 되어서야 새로운 폰을 샀다. 그런데 얼마안가 연말 모임에서 잃어버렸다. 예전에 쓰던, 이제는 골동품이 된 손바닥 크기만한 핸드폰을 다시 서랍장에서 꺼내들었다. 세상의 외피는 5년 전에 비해 더 높은 아파트들이 스카이라인을 침범하고, 산업단지와 개별입지로 들어선 공장들이 농지를 침범하고, 세련된 곡면을 가진 자동차들이 좀 더 늘었고, 사람들의 표정은 읽을 수 없는 무언가가 된 것 같았으나 큰 변화는 없었.. 2020. 4. 28. 이전 1 2 3 4 5 6 7 8 ··· 18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