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사랑하며49 <제85호> 우리 곁의 사라져가는 소중한 것들에 대하여_이재헌(우리미래) 5년 전, 낯선 도시 청주로 왔다. 대학원 생활을 하며 많은 스트레스로 우울할 때 집에서 가까운 구룡산을 자주 걸었다. 오솔길을 오르다보면 울퉁불퉁하지만 부드러운 숲길의 촉감이 느껴져 발바닥에 온 신경을 집중하게 된다. 딱딱하고 평평한 아스팔트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즐거움이다. 밤에 조용히 걷다보면 1~2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타지 생활의 외로움, 공부 스트레스, 그리고 지도교수의 폭언에 지친 마음은 안정이 되곤 했다. 눈이 많이 오는 날은 구룡산이 더 고요해진다. 자동차 엔진소리는 아득해지고 숲길에서 자주 들리던 새소리나 산짐승 발자국 소리도 사라진다. 작은 숲에서 느낄 수 있는 구룡산의 안정감과 포근함이 좋았다. 사막 같은 도시 속에서 구룡산은 나에게 오아시스였다. 우리 곁의 자연은 예전 모습을 잃어가.. 2019. 10. 24. <제84호> 미투(#MeToo) : 미안합니다. 함께 투쟁합시다._이재헌(청년정당 우리미래) 당신은 미투(#MeToo)로부터 자유로운가? 나는 아니다. 연애하면서 내 감정만 앞세우고 내 입장에서만 생각했다. 상대방이 느낄 불편함과 두려움을 철저히 내 기준에서 판단했다. 연인과 스킨십이 하고 싶을 때, 상대가 거절해도 몇 차례 요구했던 적이 있다. 강요만 하지 않으면 그것이 대화라고 생각했다. 상대가 불편함을 느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단순히 ‘싫으면 계속 거절하겠지’ 라고 생각했다. 얼마 후 상대방은 그 때 내 태도가 너무 불편했지만, 관계를 서먹하게 만들까봐 두려워서 말 못했다고 고백했다. 난 집안에서도 장남이라는 특권을 향유했다. 가부장적인 구조 속에서 어머니와 여동생이 받는 차별을 어렴풋이 느꼈지만 침묵했다. 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몇 년 전, 여동생이 어린 시절 쌓인 .. 2019. 10. 24. <제83호> 1949년 생 청년과 대화_이재헌(청년정당 우리미래) 돌아가신 아버지의 젊은 시절 사진 한 장을 발견했다. 아버지는 동해안 어딘가 해변에서 어머니를 등에 업고 웃고 있다. 부모님 뒤로 6~7살 된 내가 허리를 굽혀 조개를 줍고 있다. 사진을 한 참 바라봤다. 서른 후반 내 나이의 아버지는 두 아이의 아버지였다. 우리 가족뿐만 아니라 자신의 동생들까지 돌봐야 했다. 반대로 나는 혼자 살며 취직 안하고 자유롭게 살고 있다. ‘내 나이 때 아버지는 무슨 마음이었을까?’ 돌아가신 아버지와 이야기해보고 싶어졌다. 아버지는 1949년 8남매 중 첫 째로 태어났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포항 구룡포 근처에서 농사를 지었지만 몹시 가난했다. 아버지는 학비가 없어 고등학교를 중퇴하셨다. 군대를 다녀와서 먹고 살기위해 경찰 공무원 시험 보셨다고 한다. 시험에 합격하고 서울로 .. 2019. 10. 24. 이전 1 ··· 6 7 8 9 10 11 12 ··· 1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