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지606 오늘의 달력 - 유현아 오늘의 달력 유현아 어제의 꿈을 오늘도 꾸었다 아무도 위로할 수 없는 절망의 바닥을 보았다 바닥 밑에 희망이 우글우글 숨어 있을 거라고 거짓말했다 한장을 넘겨보아도 똑같은 달의 연속이었다 못 하는 게 없는 것보다 어쨌거나 버티는 게 중요했다 바닥 밑에 바닥, 바닥 밑에 바닥이 있을 뿐이라고 그럼에도 우리는 바닥에 미세한 금들이 소용돌이치는 것을 보았다 바닥의 목소리가 뛰어올라 공중에서 사라질때까지 당신의 박수 소리가 하늘 끝에서 별처럼 빛날 때까지 오늘도 달력을 넘기는 것이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슬픔은 겨우 손톱만큼의 조각 당신의 애인에게서 내일의 꿈을 들었다 - 슬픔은 겨우 손톱만큼의 조각(창비, 2023) 2023. 9. 25. 시를 들려주겠니 시를 들려주겠니 박현경(화가) 중학교 2학년 남자반 담임에 학년부장. 학교에서 내가 맡고 있는 역할이다. 뉴스를 통해 보고 듣는 온갖 사건, 사고, 정쟁과 투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학교 일과는 어김없이 계속된다. 그동안 나는 9월 4일 공교육 멈춤의 날 집회와 이후 이어진 또 다른 교사 집회에서 맡은 역할을 수행하고, 틈틈이 10월 단체전을 위해 그림 작업을 해 나갔다.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바쁜 나날이었다. 그런 가운데 담임으로서 그리고 학년부장으로서 역할에 소홀하지 않았다는 점이 다행스럽다. 아무리 중요해 보이고 대단해 보이는 일을 한다 해도 그로 인해 일상이 무너지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보도 자료를 내고, 기자들과 통화하고, 집회 성명문을 작성하고, 3만 명이 운집한 집회에서 발언을 하고, 길.. 2023. 9. 25. 전쟁 같은 맛 - 그레이스 M. 조 남성페미니스트 모임 ‘펠프 미’9월의 책 “엄마가 보고 싶어 졌다” 이재헌 오랜만에 엄마가 반찬을 한 상자 보내주셨다. 작은 아이스박스 안에는 10여 종에 가까운 반찬과 과일, 참기름이 꽉꽉 눌린 채 담겨져 있었다. “전쟁 같은 맛”을 읽고 ‘엄마’라 불리는 사람들의 요리를 하고 포장을 하는 마음을 헤아려 봤다. 누군가에게는 가족들을 걱정하고 사랑하는 마음, 학교에 가져갈 아이 도시락을 싸던 누군가에게는 내가 자식을 얼마나 관심 갖고 정성껏 돌보는 지 드러내는 마음, 타국에서 자녀들에게 모국 요리를 해주던 누군가에게는 정체성을 기억하고 아픔을 달래주는 마음을 담았을 것이다. 그레이스 조의 엄마는 사회적 약자였지만 약한 사람은 아니었다. 가족을 위해 타국 들판과 산에서 채집을 하고 끔찍한 일터에서 새벽마다.. 2023. 9. 25. 이전 1 ··· 42 43 44 45 46 47 48 ··· 20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