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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목록 다정한 목록 잔디 퇴근하면서 동네 단골 슈퍼에서 약간의 장을 보았다. 추석 연휴 바로 전날 퇴근하면서 장을 다 보기엔 빠뜨리는 것이 있을 수도 있고, 빠뜨린 것을 채우기엔 또 긴박하여 마음이 지나치게 바빠질 수 있으니깐 나름 나를 위한 배려를 한 조각 이루었다. 집에 돌아와 장 본 것을 저녁 설거지를 하기 전에 싱그러운 쪽파의 뿌리를 자르고 질기거나 시들한 부분을 벗겨내어 쪽파를 다듬고 신문지에 둘둘 말아 냉장고에 넣는다. 아직 씻기엔 이른 시기이다. 동그란 육전을 할 다짐육을 밑간을 해서 통에 넣어 김치냉장고 빈칸에 넣고, 설거지를 하고 잔디 광장으로 달려간다. 물론 슬로우조깅이다. 달리기가 아닌 것도 같고, 달리기인 것 같기도 한 그 달리기를 하며 3킬로미터를 채우고 집으로 돌아온다. 씻고, 하루를.. 2026. 9. 28.
커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즐거움 커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즐거움 박윤준(음성노동인권센터 상담실장) 해인을 양육하면서 인생에서 처음 느껴보는 감정들이 있다. 감정이란 얼마나 풍부한 세계인가. 미움, 슬픔, 짜증, 분노, 기쁨, 즐거움, 아쉬움, 우울, 무서움, 불안, 설렘, 뭉클함, 대견함, 고마움, 존경스러움, 질투, 배신감, 사랑… 수많은 감정의 낱말들이 있지만 우리는 그 단어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감정들을 느끼며 살아간다. 22개월의 해인은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나고 있다. 키, 몸무게는 정체되어 있는 반면, 인지, 교감, 언어, 신체 능력 면에서 커가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다. 예전에는 낱말 카드나 그림책에서 같이 읽었던 단어 몇 개를 따라했다면, 요즘에는 출처 불명의 말들을 내 앞에서 쏟아냈다. “반딱 반딱 쟈근 별 아듬답께 .. 2026. 9. 28.
가을, 오면 가지말아라. 혹독한 계절은 언제나 겨울이어야 했다. 엄동설한이 대개의 인간에게 상징하는 바가 있다면 호된 고통이었다.봄은 낮잠처럼 나른하고 여름은 파리처럼 성가시고 가을은 푸욱 익어가는 계절이었고 그렇게 확신에 차서 맴맴 도는 계절이 영원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었다. 언제나 그러할 거라고 진심 믿었었다...인간의 믿음이란 얼마나 하찮은 결말로 끝나는지 영영 모르고 살고 싶었는데.백 년도 못 사는 마음이 영원한 믿음을 품는다는 것부터 하찮다.생애에서 가장 혹독한 여름(살아있는 한 매년 갱신할 혹독함)을 견디고 몸과 마음에 새겨진 빗금이 처절하게 선명하다. 올 여름에는 차라리 죽을 때까지 엄동설한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까지 했었다. 그러다가도 어찌 어찌 살아내고 시간이 흐르니 너무나 뻔하고 말짱한 한 줄기 선선한 바람.. 2026. 9.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