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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호> 달랏에서의 평화를 여러분과 함께_미진 잘 지내시죠? 저는 베트남에서 한 달을 잘 보내고 돌아왔습니다. 베트남 북부 고산지대 사파에서 첫 편지를 보냈던 것 같은데 그길로 중부에서 남부까지 쭉 내려와 어느덧 한국이네요. 사파이후 다시 하노이로 들어가 주말 한적한 도시를 즐기고 중부 다낭을 거쳐 중남부 호이안, 나트랑으로 남부 달랏과 호치민으로 여정을 마무리 했습니다. 긴장이 제법 풀린 상태에서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고 웃고 질문하는 시간들은 마음을 풍요롭게 합니다. 여행을 통해 그동안 무뎌졌던 내 자신의 감각을 하나씩 깨워내고 주변을 관찰할 수 있던 시간은 숨 가쁘던 마음을 달래주었습니다. 사파만큼이나 제 발목을 붙잡았던 지역은 베트남 남부의 달랏이었는데요, 역시 고산지대 입니다. 해발1500m의 이 도시는 프랑스 지배 당시 휴양지로 사용되던 지.. 2019. 10. 15.
<제77호> 산티아고 길을 걷다 (3)_김승효(회원) 기억을 더듬어 길 위에서 내가 만난 사람들과 길을 걸으며 내 눈과 마음에 아로새겨졌던 수많은 아련한 감동의 순간들을 다시금 소환한다. 객기를 부린 나의 오만이 망가진 발로 인해 산산이 부서질 때쯤 만난 알베르게 주인장 할머니는 내가 순례자라는 이유만으로 고귀한 존재임을 가슴으로 깨닫게 해주었다. 그때의 따뜻함이 지금도 아련하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일본인 할아버지 순례자는 혼자셨는데 우리가 한국인이라고 하니 할 말이 많으신 듯 했다. 일본이 한국에 저지른 잘못된 역사에 대해 반성하고 사과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며 당신이라도 대신 사과하고 싶다는 말을 잘 보이지 않고 느린 손놀림에도 번역기를 돌려가며 그예 사과를 하셨다. 늙은 어르신이 마음을 다해 고개를 숙이는 모습에 오히려 감사한 마음이 들 정도였다.. 2019. 10. 15.
<제77호> 그 아이의 시간_잔디(允) 수첩에 일기도 없고, 낙서도 없고, 마음 깊이 담은, 문자도 없이 구월을, 보낸다. 나의 구월은 익숙함을 떠나보내면서 시작되었다. 밤사이 비가 많이 내린 다음 날, 팔월의 마지막 날 오후, 점심 먹기 전, 받은 전화... 오전에 아이가 혼자 집을 나왔다가 흙탕물에 떠내려갔고, 많은 사람들이 마을을 따라 흐르는 소하천을 수색하다 조금 전에 아이의 몸을 찾았다고... 아이의 차가운 몸 앞에서, 잘잘못을 서로 따지며 아이의 할머니와 아이의 엄마는 큰 목소리를 내고 있고, 아이의 아버지는 꺼이꺼이 우는 모습을 누군가 전해왔다는 내용의 전화... 믿을 수가 없어서, 우선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 담임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다. 선생님도 나도, 아이의 눈을 마주보며 아이와 더 이상 놀이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서로 울.. 2019. 10.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