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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산 위에서 부는 바람96

<제77호> 그 아이의 시간_잔디(允) 수첩에 일기도 없고, 낙서도 없고, 마음 깊이 담은, 문자도 없이 구월을, 보낸다. 나의 구월은 익숙함을 떠나보내면서 시작되었다. 밤사이 비가 많이 내린 다음 날, 팔월의 마지막 날 오후, 점심 먹기 전, 받은 전화... 오전에 아이가 혼자 집을 나왔다가 흙탕물에 떠내려갔고, 많은 사람들이 마을을 따라 흐르는 소하천을 수색하다 조금 전에 아이의 몸을 찾았다고... 아이의 차가운 몸 앞에서, 잘잘못을 서로 따지며 아이의 할머니와 아이의 엄마는 큰 목소리를 내고 있고, 아이의 아버지는 꺼이꺼이 우는 모습을 누군가 전해왔다는 내용의 전화... 믿을 수가 없어서, 우선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 담임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다. 선생님도 나도, 아이의 눈을 마주보며 아이와 더 이상 놀이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서로 울.. 2019. 10. 15.
<제76호> 지나간... 지나온...,_잔디(允) 커다란 상수리나무 그늘에 앉아 살며시 불어오는 바람에 고마워하며, 이 숲에 옮겨 심은 줄기 굵은, 오십 살은 되어 보이는 느티나무가 소생하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설경을 품은 영화 한 장면에 위로받고, 투명한 커피 컵에 얼린 얼음을 내 어머니가 하셨듯이 긴 바늘과 나무 밀대로 톡톡 깨어 아이 입에 넣어주기도, 진하게 탄 블랙커피에 동동 띄워 얼음과 컵과 숟가락이 부딪는 시원한 소리 들으며, 엄마 미숫가루 타 줘 소리에 와 고소하겠다~ 하며, 한낮 더운 바람 나오는 선풍기에도 고마워하며 이 여름을 건너고 있어요. 지나가면 곱게 접혀질 제 이야기의 한 부분이, 다른 해와는 다소 다르고 힘들기도 했던 한 때가 지나갑니다. 한 밤엔 서늘하여 온통 열어놓았던 커다란 유리문과 창문을 닫는 형편이 되었습니다. 어느 .. 2019. 10. 15.
<제75호> 바람 한 줄기_允(잔디)  홀로 깨어있는 깊은 밤. 카페인은 안돼 하면서도 나에게 선물하는 고요 한 잔. 보리차나 물 한 잔이 나을까 갈등 한 잔. 그래도 고독은, 쓴 커피지 여유 한 잔.  여름 비 맞으며, 이젠 손자손녀가 쓰지 않는 어린이집 가방 속에 고추끈을 넣고, 절룩거리는 발걸음으로 고추밭을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시며, 고추끈 매는 그를, 미련하다거나 욕심이 많다고 할 순 없겠지. 그리 키운 먹거리를 자식에게 나누어주시고, 장에 팔거나 이웃에 팔아, 쪼개어 당신 용돈 쓰실, 어린이집 가방만치 작은 체구의 낯모르는 어머니. 살아오시는 내내 발뒤꿈치가 닳았을 당신...  가끔 나를 통해 밖으로 나간 글과 나,를 생각한다. 그리고 그글과 나를 함께 보는 사람들을 생각한다. 아직 내게서 나가지 않은 글을 내안에 담고 있는.. 2019. 10.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