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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호> 산티아고 길을 걷다 (3)_김승효(회원) 기억을 더듬어 길 위에서 내가 만난 사람들과 길을 걸으며 내 눈과 마음에 아로새겨졌던 수많은 아련한 감동의 순간들을 다시금 소환한다. 객기를 부린 나의 오만이 망가진 발로 인해 산산이 부서질 때쯤 만난 알베르게 주인장 할머니는 내가 순례자라는 이유만으로 고귀한 존재임을 가슴으로 깨닫게 해주었다. 그때의 따뜻함이 지금도 아련하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일본인 할아버지 순례자는 혼자셨는데 우리가 한국인이라고 하니 할 말이 많으신 듯 했다. 일본이 한국에 저지른 잘못된 역사에 대해 반성하고 사과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며 당신이라도 대신 사과하고 싶다는 말을 잘 보이지 않고 느린 손놀림에도 번역기를 돌려가며 그예 사과를 하셨다. 늙은 어르신이 마음을 다해 고개를 숙이는 모습에 오히려 감사한 마음이 들 정도였다.. 2019. 10. 15.
<제77호> 그 아이의 시간_잔디(允) 수첩에 일기도 없고, 낙서도 없고, 마음 깊이 담은, 문자도 없이 구월을, 보낸다. 나의 구월은 익숙함을 떠나보내면서 시작되었다. 밤사이 비가 많이 내린 다음 날, 팔월의 마지막 날 오후, 점심 먹기 전, 받은 전화... 오전에 아이가 혼자 집을 나왔다가 흙탕물에 떠내려갔고, 많은 사람들이 마을을 따라 흐르는 소하천을 수색하다 조금 전에 아이의 몸을 찾았다고... 아이의 차가운 몸 앞에서, 잘잘못을 서로 따지며 아이의 할머니와 아이의 엄마는 큰 목소리를 내고 있고, 아이의 아버지는 꺼이꺼이 우는 모습을 누군가 전해왔다는 내용의 전화... 믿을 수가 없어서, 우선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 담임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다. 선생님도 나도, 아이의 눈을 마주보며 아이와 더 이상 놀이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서로 울.. 2019. 10. 15.
<제77호>밥 먹었니?_하재찬(회원, 사람과 경제 상임이사) 울 엄니는 때가 어느 때인데 전화 통화를 할 때면 늘 ‘밥 먹었니?’를 늘 묻는다. 먹거리가 넘치는 요즘인데 말이다. 울 사무실 동료도 출장을 나갈 때면 ‘식사는 챙겨드세요!’하고 출장을 갔다 오면 ‘식사는 챙겨드셨어요?’ 한다. 울 엄니 ‘밥 먹었니’로 울 동료 ‘식사 챙겨드세요’로 ‘사랑한다’는 말을 대신한다. ‘밥 먹었니’라는 울 엄니 말의 정확한 뜻을 아는데 40년이 걸렸다. 말이 나오게 한 그 마음을 보는데 40년이 걸렸다. 사랑한다는 말은 참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한다. 울 엄니처럼 ‘밥 먹었니?’로 하는 사람도 있고, ‘언제 들어 올 거야?’라는 말로 하는 사람도 있다. 담배 피지마! 술 먹지마! 운전조심해! 병원 갔다 와! 등등 명령조로 하는 사람도 있다. 사랑한다는 말을 듣기 쉽지 않은 세.. 2019. 10.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