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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마음거울93

<100호> 바람은 아직도 부른다_박윤준(음성노동인권센터 활동가, 회원) 시인은 아직도, 아직도, 삶을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태우는 담배가 늘어나도, 돌벽에 머리를 박고서 애꿎은 민들레 뿌리 뜯어지도록 발길질 하는 날이 많아지더라도, 모락모락 김을 피어올리는 국밥 한 그릇 앞에서 공손한 마음을 가질 줄 아는 사람들이다. 누군가는 빌딩을 올리고, 누군가는 빌딩에 세를 내며 일하고, 누군가는 일하고 버린 쓰레기를 담고, 누군가는 그 바닥을 닦지만, 이처럼 불평등한 세상에서 아직, 미치지 않고, 섣불리 화 내지 않고, 무력하게도, 무력하게도 매일 그 고통을 몸에 단단히 새기는 노동자들이다. 잔근육처럼 박힌 애환을 이끌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길 잃은 고양이 한 마리에게 측은지심을 느끼는 이들이다. 그에게 먹이를 챙겨주려 정작 돌보지 못한 자기 몸을 더듬고, 빈 주머니 속을 뒤.. 2020. 9. 1.
<4호> 바보처럼 살자고 독촉(督促)합니다.(督促 -살펴보고 바로잡을 독督, 재촉하여 다다를 촉促) _ 겨자씨 석정의 마음 거울 3 온달 그는 늘 최전선에 있다 후주 무제 쳐들어올 때는 비사들에 있었고 신라와 맞설 때는 죽령으로 달려갔다 그는 왕의 신임을 받는 부마였지만 궁궐 편안한 의자 곁에 있지 않았다 그는 늘 최전선에 있다가 최전선에서 죽었다 권력의 핵심 가까이에서 권력을 나누는 일과 권력을 차지하는 일로 머리를 싸매지 않았다 높은 곳 쳐다보지 않고 아래로 내려갔다 안락하고 기름진 곳으로 눈 돌리지 않고 목숨을 걸어야 하는 험한 산기슭을 선택했다 그때 궁궐 한가운데 있던 이들 단 한 사람도 기억하지 못하지만 천 년 넘도록 우리가 온달을 기억하는 건 평강공주의 고집과 눈물 때문 아니다 가장 안온한 자리를 버리고 참으로 바보같이 가장 험한 곳 가장 낮은 곳 향해 걸어갔기 때문이다 살면서 우리가 목숨 던져야 할 곳이 어디인지를 알았기.. 2020. 8. 7.
<3호> 기가 막히는 말, 기가 통하는 말_겨자씨 석정의 마음거울 2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한동안 세상과 사람들을 원망하고 살았습니다. 사람들을 만날 때 마다 분명 이게 옳아 보이는데 말을 하면 벽에다 얘기하는 것 같고, 얘기를 하면 할수록 가까이 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갔습니다. 속이 아팠지만 그럴 때 마다 ‘저 사람들도 언젠가는 내 얘기를 인정하고 통할 때가 오겠지’ 하는 마음이 일며 더욱 고집스럽게 거침없이 이야기 해 왔습니다. 말을 하면 할수록 사람들은 더욱 멀어져 가고, 세상에 대한 원망과 흥분은 커지고, 고집은 더욱 강하고 단단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몇 년 전, 딸 아이 공부를 봐주다가 내 말을 못 알아듣는 것 같은 딸에게 ‘집중해’하고 크게 소리 친 일이 있었습니다. 순간 딸아이의 몸이 바짝 움츠러들며 기가 질려 있는 모습이 눈 앞.. 2020. 8.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