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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마음거울97

<제98호> 책임이라는 정치적인 과제_박윤준(음성노동인권센터 활동가, 회원) 그럴 때가 있다. 내가 잘못한 거라고, 나의 부족함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인정하기 싫을 때가 있다. 내가 비겁해서, 무책임해서, 사려 깊지 못해서 그 사람에게 어떤 손상을 만들었음을 인정하기 싫을 때가 있다. 그냥, 나는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덮어두고 믿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있을 때가 있다. 그때는 세상에서 가장 무겁고 단단한 쇠붙이들을 불러 모아 방패를 만들고 웅크리고 앉는다. 불안한 마음은 몸과 마음을 천근만근 무겁게 만든다. 아, 내가 별로인 사람이구나. 가슴 깊이 사랑하는 이와 시간을 보낼수록 깨달아가는 진실은 황홀한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마음 속 가장 밑바닥에 있는 부끄럽고 감추고 싶은 납작한 쇠붙이를 꺼내서 당신과 내가 함께 확인하는 시간들이었다. 내가 그 사람을 아프게 하는 것은 그 납작.. 2020. 7. 28.
<제97호> 오일팔에는 잠시 멈추기로 한다._박윤준(음성노동인권센터 활동가, 회원) 민주주의, 독재타도, 계급투쟁, 인민해방 … 이념적인 구호들은 꽤 오랜 시간 한국 사람들을 지배해왔다. 그것들은 머리 위에 머무는 커다란 구름과도 같아서 사람들의 하늘을 규정했고, 날씨를 만들었고, 그에 걸맞는 행동들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같은 하늘을 가진 사람들을 동지라 불렀다. 구름은 바람이 불어옴에 따라 흘러갔고, 구름이 떠나간 뒤 마른하늘 아래 선 사람들 중 몇몇은 구름 없이 화창한 하늘을 괴로워했다. 그들은 숲 속으로, 동굴로, 절 지붕 밑으로 들어가 방 한 칸 짜리 구름이라도 소유하고자 했다. ‘한 낱’구름은 한 인간의 마음속에 비슷한 모양의 구름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어떤 인간은 자신의 키가 하늘까지 닿는다고 착각하기도 했다. 마음 속 구름과 머리 위의 구름은 서로 부딪히며 천둥소리를 내었.. 2020. 7. 28.
<제46호> <떼이야르 드 샤르댕의 사상> 새로운 人類의 출현! - 정태옥 님(회원) 들어가는 글 < ‘떼이야르 드 샤르댕’은 1881년 5월 1일 프랑스 중부 오베르뉴에서 태어났다. 18세에 예수회에 입회하여 1911년 신부가 되기까지 신학, 지질학, 고생물학 등을 연구했다. 소로본 대학에서 포유류의 진화를 연구, 자연과학 부분의 박사학위를 받고 “파리 가톨릭 연구원”의 지질학 교수 자격도 얻었다. 1923년 과학적 사명을 띠고 중국에 파견된 후 20년 이상 지질학 및 고생물학의 연구와 탐험에 몰두했다. 1929년 북경 주구점에서의 북경원인 발굴은 고고인류학 분야의 가장 빛나는 업적 중 하나다. 2차 대전 후 파리로 돌아온 떼이야르는 “파리 과학 연구원 국립중앙연구소장”에 임명되었으며, “꼴레즈 프랑스”의 교수로 초빙되기도 했다. 1951년에는 인류학 연구기관인 뉴욕 웬느 그렌 재단의 .. 2020. 6.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