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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디49

<제88호> 반_잔디(允)  반달. 어느 날에는 여위어가는 것처럼 여겨졌다가, 어느 날에는 커져만 가는 것처럼 여겨지는 모양새. 점점 커져 차오른다고 여겨질 때에는 내 마음도 차올라 충만하다. 야위어간다고 여겨질 때에는, 주방에 옅은 불빛 하나 켜두고, 잠이 든다. 가로등 하나 없어, 희미한 불빛조차 없는 캄캄한 숲속에서, 까만 밤 잠시 일어난 식구 중 누구도 넘어지지 말라고, 캄캄함 속에 길 잃지 말라고... 달디 단 편안한 잠 속에서는, 희미한 충만을 마음속에서 자가발전한다. 다시 반가이 맞게 될 반달을 기다리며.  반말. 다섯 살 아이가 지하철에서, 옆에 앉으신 할아버지께 “너는 이름이 뭐야?”라고 물었다. 아이엄마는 어르신께 양해를 구했지만, 아이가 자꾸 반말로 어르신께 말을 걸어 불편해서 다음 역에서 내렸다는 민망한 .. 2019. 10. 24.
<제87호> 우리는 계속 꿈꿀 수 있을까?_잔디(允) -가만히 내 속을 들여다보면, ‘두려움’이 웅크리고 있다. # 뜨겁고 무거운 하늘 아래 서서,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당신과 나의 북극곰을 생각한다. 빙하가 눈물처럼, 폭포처럼 녹아서 흘러내려 먹이를 찾아 헤엄치다 지쳐, 잠시 쉴, 얼음 조각이 없어 힘들어한다는 그 존재... 북극곰은 안녕할까?... # 습하고 무더운 한낮, 무언가 놀이에 집중하며 땀이 송글송글 맺힌 아이를 보면서도 좀처럼 켜게 되지 않는 치료실 한 구석의 에어컨, 나조차 에어컨을 틀면, 지구는 어떻게 될까... 내 몸이 흩어지고 난 후 살아갈 아이들의 삶은 어찌 될 것인가... # 싱그러운 여름 아침, 출근하는 길, 커다란 차에 혼자 타고 가는 것이 영 불편하지만, 버스를 타고 출퇴근하기엔 시간은 빠듯하고, 길은 멀다. 꽉 닫혀있는 .. 2019. 10. 24.
<제86호> 나는 여전히, 시인이 되고 싶어라_잔디(允)  미희가 있었지. 내 인생에, 초등 3학년 때부터 스무 몇 살까지 미희가 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 겨울방학부터 미희와 나는, 농구부에서 교대로 센터 역할을 했다. 농구부 언니들에게 경기 진행을 능숙하게 못한다고 혼날 때에도 서로 위로해 주고, 더운 여름 날, 순발력 향상 훈련한다고 왼쪽으로 뛰다가,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면, 방향을 바꾸어 오른쪽으로 뛰는 것을 한참 한 후 숨이 헉헉 거릴 때에도 조금만 더 참자는 눈빛을 주고받던 미희. 이런 저런 연유로 6학년이 되어서는 농구부에서 나와 서로의 집으로 마실을 가서 떡볶이를 해 먹기도 하고, 어딘가에서 빌려온 만화책을 보며 깔깔거리던 그때... 미희네 집 뒷마당엔 오늘처럼, 빨간 양귀비꽃이 피어있기도 하였다. 우리 집에 놀러오면, 집에서 붕어빵 봉지를 접는.. 2019. 10.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