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지/마음거울93 <제88호> 딴짓이 우리를 구원하리라_박현경(교사) 폭발 직전의 혹성을 탈출하는 기분으로 교무실 문을 나선다. 첩보원이 도청 장치를 만지듯 재빠르게 귀에 이어폰을 꽂는다. 팟캐스트 재생 버튼을 누르면 흘러나오는 ‘매불쇼’나 ‘김현정의 뉴스쇼’ 또는 ‘검은 방’, 아님 뭐든. 아, 산소 같은 이 소리……. 나는 심호흡을 한다. 사실, 폭발 직전인 건 교무실이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 숨 쉬는 것까지 대학 입시를 위해 이루어지는 듯한 이 견고한 시스템의 한 부품으로 움직이노라면, 내 존재가 희미해져 가는 느낌에 숨이 가쁘다. 그리고 내 안엔 ‘딴짓, 딴짓, 이거 말고 딴짓!’이라는 강렬한 욕구가 부풀어 오른다. 좋아하는 방송을 통해 ‘다른 세상’과 교신하는 건 이 혹성을 벗어나며 가장 즉각적으로 할 수 있는 딴짓. 성적이나 입시가 아닌 ‘다른 세상’ 이야기에 .. 2019. 10. 24. <제86호> 애국심 같은 소리하네_이재헌(청년정당 우리미래) ‘난 홍콩인이다. 중국인이 아니다.’ 미국 보스턴에서 유학중인 홍콩 출신 대학생 후이는 같은 지역 중국유학생들에게 공격을 받고 있다. 그가 기고한 칼럼 때문이다. 후이는 출신국에 대한 질문에 홍콩이라고 대답했지만 중국인들은 ‘홍콩이 아니라 중국’이라고 화내며 억압했다. 이 배경을 설명한 후이의 칼럼에 중국인 유학생들이 격한 반감을 표했다. 일부는 중국에 대한 무시라며 그를 처형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중국 유학생들이 치기 어려 보이는가? 사회주의에 세뇌된 국수주의자들로 보이는가? 우리는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애국심이란 개인의 이익과 국가의 이익이 충돌할 때 국가의 이익을 우선 선택하는 것. 국가를 위해 자신의 소중한 것을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군사정권 때 내용이 아니다. 2015년 국.. 2019. 10. 24. <제86호> 얼마나 먼 길을 달려 우린_박현경(교사) 일요일 아침. 일억 오천만 킬로미터를 달려온 햇살이 우리 방에 쏟아진다. 일주일을 달려온 우리 몸은 햇살에 녹는다. 내 옆에 누운 그대의 잠든 얼굴을 본다. 그 옆에 누운 왕순이의 갸르릉 소리를 듣는다. 우리가 함께 있다는 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이렇게 나란히 아침볕을 쬐기까지 우린 얼마나 먼 길을 달려 서로에게로 왔는가. 그대는 그해 여름 참 많이 달렸다. 저녁부터 새벽까지는 오토바이를 타고 달렸다. 날마다 짧게는 여덟 시간, 길게는 열한 시간 동안 주로 곱창볶음이나 찜닭을 싣고서 원룸촌 골목골목을 달렸다. 야식집 ‘왕십리 순대곱창’에서 일한 지 일 년쯤 돼 가고 있었다. 야식을 주문하는 이들은 대개 혼자 사는 사람들이었고 그대도 일을 마치면 혼자만의 방으로 돌아가곤 했다. 그리고 아침이면 두 다리.. 2019. 10. 24. 이전 1 ··· 17 18 19 20 21 22 23 ··· 3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