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지/마음거울93 <제85호> 하복 윗도리에게 사과를_박현경(교사) “어젯밤에 집에 가서 하복을 다시 입어 보았다. 그래, 생각했던 만큼 나쁘지는 않구나, 하고 생각했다. 오히려 하복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마음속으로 하복 윗도리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젠 벌써 오래전이 되어 버린 어느 날 오후에 나랑 같이 먼 길을 걸어가서 그 하복을 사 왔던 엄마에게도 마음속으로 용서를 빌었다.” 2002년 9월, 열아홉 살 박현경이 썼던 이 글을, 2019년 5월, 서른여섯 살 박현경이 다시 읽는다. 옛 일기장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연필 손글씨. 17년 전 고3 교실 어느 쉬는 시간에 이 문장들을 적으며 시큰했던 코허리 느낌도 생생히 떠오른다.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우리 집은 경제적으로 많이 어려웠다. IMF 사태의 여파였다. 교복 값은 큰 부담이었고 그런 우리 가족.. 2019. 10. 24. <제84호> 질문은 날마다 계속돼야 한다_박현경(교사) 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은 귀싸대기를 잘 때렸다. 자습 시간에 잡담을 하거나 숙제를 안 해 오거나 자신의 비위를 거스르는 아이들에게 그는 늘 매서운 체벌을 가했고 교실엔 공포가 감돌았다. 인상적인 점은 ‘질서를 (때려서) 가르쳐야 한다’는 그의 지론에 우리들 대부분이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는 것. 그에게 귀싸대기를 맞을 일이 없는 아이들은 대개 착실한 학생들이었으므로, 그의 말을 잘 듣는 것과 좋은 사람이 되는 것 사이의 경계가 꽤 애매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 분위기였기에 그에게서 전권을 위임받은 반장이 친구들을 체벌하는 일도 이뤄질 수 있었을 것이다. 똑똑하고 모범적인 여학생 J를 투표 없이 반장으로 임명한 담임은 교실을 비울 때마다 J의 손에 30cm 자를 들려 줬다. 떠드는 애를 잡아내 .. 2019. 10. 24. <제83호> 내가 이곳을 떠나지 않는 이유_박현경(교사) 3월이 오고 고3 담임 생활이 시작됐다. 이 시기엔 새로운 학생들을 만나 서로를 알아 가는 기쁨도 분명 있지만, 종일 바쁘게 내달려야 하는 힘겨움이 그 기쁨을 잠식한다. 특히 첫 주 동안은 화장실 갈 짬조차 내기 힘들다. 수업에 들어갔다 오는 틈틈이 서류들을 작성해 내고, 급히 교실에 달려가 전달 사항을 전하고, 학년별 또는 교과별 회의에 참석하고, 그러다 종이 치면 또 서둘러 수업에 들어가고……. 그렇게 온종일 종종거린 끝에 맞이하는 저녁 일곱 시 이십 분은 꽤나 피곤해 이젠 좀 집에 가 쉬고 싶은 시간이지만, 바로 그 시각에 일반계 고등학교에선 ‘야간자율학습’이라는 또 하나의 일과가 시작된다. 학년 초부터 공부 분위기를 잡아 주기 위해 담임들 대부분이 늦게까지 남아 자율학습 감독과 학생 상담을 한다... 2019. 10. 23. 이전 1 ··· 18 19 20 21 22 23 24 ··· 3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