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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괜찮아 한강  태어나 두 달이 되었을 때아이는 저녁마다 울었다배고파서도 아니고 어디가아파서도 아니고아무 이유도 없이해질녘부터 밤까지 꼬박 세 시간 거품 같은 아이가 꺼져버릴까 봐나는 두 팔로 껴안고집 안을 수없이 돌며 물었다왜 그래. 왜 그래. 왜 그래. 내 눈물이 떨어져 아이의 눈물에 섞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문득 말해봤다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괜찮아. 괜찮아. 이제 괜찮아.  거짓말처럼아이의 울음이 그치진 않았지만누그러진 건 오히려 내 울음이었지만, 다만우연의 일치였겠지만며칠 뒤부터 아이는 저녁 울음을 멈췄다 서른 넘어야 그렇게 알았다내 안의 당신이 흐느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울부짖는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듯짜디짠 거품 같은 눈물을 향해괜찮아왜 그래, 가 아니라괜찮아. 이제 괜찮아.     .. 2024. 10. 25.
네 얼굴을 만지려고 네 얼굴을 만지려고                                                                                      박현경(화가, 교사) 1.“너랑 함께 살려고 이 땅에 왔어. 날개가 있지만 난 이 땅에 있지. 하늘이 아니라 바로 이 땅에. 이 세상은 아름다워. 서로 다른 색깔들이 얽히고설킨 촘촘한 그물 같은 오묘한 이 세상. 내 한쪽 귀는 위쪽에, 반대쪽 귀는 아래쪽에 달렸어. 하늘의 소리, 땅의 소리를 두루 들으려고.내 왼눈, 오른눈은 서로 다른 빛깔이야. 서로 다른 존재들을 잘 살펴보려고.나는 사람의 눈과 귀, 짐승의 코와 입, 식물로 된 발을 지녔지. 어떤 경계에도 얽매이지 않으려고.내 눈에는 보여,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내 눈에는 보여, .. 2024. 10. 25.
그때는 언제일까요? 그때는 언제일까요?                                                                                           잔디 토요일 아침, 여유로운 잠에 빠져 있을 때 꿈속에서 자꾸 119 차 소리가 들린다. 아, 누군가를 구하러 나는 진정 일어나야만 하는가? 꿈결에 생각하고 있는데 어느덧 몸은 이것은 꿈이 아니라 실제로 마당에서 들리는 소리라는 걸 알고 벌써 창문가에 서서 밖을 내다보고 있다. 아, 할머니……. 뒷집 할머니에게로 달려가 보니, 할머니는 주방 바닥에 누워 계시고, 구급대원 두 분이 할머니 좌우에서 제세동기를 가동시키며 분주히 할머니를 살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일단 할머니집 마당으로 구급차를 안내하고,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하는 이.. 2024. 10. 25.